은행 外貨차입 사실상 중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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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들이 외국돈 빌리기를 사실상 중단했다. 북핵 문제에 이어 SK사태가 터지면서 외국 돈을 빌릴 때 내는 가산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는 등 국제금융시장에서 '코리아 리스크'가 다시 커졌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이달 중 외국계 은행과 연합해 3억달러를 조달하려던 계획을 수정, 1억5천만달러만 조달한 상태에서 나머지 1억5천만달러는 다음 달 이후로 미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SK사태 후 이틀새 외화를 빌릴 때 내는 가산금리가 0.05%~0.07%포인트 가량 급등했다"며 "금리를 떠나 외국계 은행들이 아예 돈을 빌려주지 않겠다고 해 조달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국민은행은 초우량 은행이라 사정이 나은 형편이다. 상당수 은행들은 외화차입을 아예 포기하는 분위기다.

산업은행은 지난 1월 5억달러의 '글로벌본드'를 발행할 때 미 재무부 채권금리에 1.27%의 가산금리를 부담했는데 최근 가산금리가 2.1%로 오르자 이달 안에 5억달러를 조달하려던 계획을 포기했다.

이 은행 관계자는 "가산금리가 급등한 것은 해외 투자자들이 북핵 위기에 SK사태까지 겹치면서 '코리아 리스크'를 심각하게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급전 조달은 더 어려워졌다. 하나은행은 지난 12일 5천만달러를 한달 만기로 빌린 뒤 추가 차입을 중단했다. 해외 금융회사들이 SK사태 후 가산금리를 0.04% 이상 요구하자 하나은행은 당분간 자체 외화자금으로 꾸려가기로 했다.

해외 차입 여건이 급속히 나빠지자 일부 은행은 과거에 빌린 달러 자금의 상환을 늦추려고 하고 있다.

1997년 재정경제부가 세계은행으로부터 빌린 18억달러를 운영자금으로 사용해온 수출입.외환.국민.산업은행 등 4개 은행은 최근 재정경제부에 "18억달러를 일시에 갚을 경우 외화 운용에 심각한 차질이 생긴다"며 17일로 예정된 상환 일정을 늦춰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한편 재정경제부는 다음달 만기가 돌아오는 10억달러 규모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의 차환 발행을 연기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외평채 가산금리가 12일 하루 만에 0.25%포인트 올라 1.97%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1.28%였던 외평채 가산금리는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가파르게 올라 1.75%까지 치솟은 뒤 11일 잠시 주춤했으나 SK사태가 터지면서 다시 급등세로 돌아섰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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