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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구조 손 안 보면 안철수 제1야당 돼도 정쟁 계속될 것”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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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영 교수. 성균관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콘츠탄츠대학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수출정책의 한계를 대만과 비교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에 『자본주의의 역설』 『공황과 장기불황』 등이 있다.

성균관대 이국영(정치경제학ㆍ사진) 교수는 “이명박정부 이래 대한민국은 명백한 ‘통치불능(ungovernability)’에 접어들었다”며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와 양당제 구도를 내각제와 다당 구도로 개혁해야만 통치불능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구 국가들의 정당구조와 선거제도를 연구해온 이 교수는 26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진단하고 “양당제로 인한 대결정치가 특징인 영국식 모델보다 다당제로 안정적인 국정을 유지해 온 독일식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금의 권력구조를 손보지 않는 이상 안철수 의원과 같은 중도세력도 제1 야당이 되는 순간 여당과 정쟁을 위한 정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통치불능의 개념이 뭔가.
“1950~60년대 서구 국가들이 누리던 ‘자본주의 황금기’가 70년대 오일쇼크 등의 요인으로 종말을 고했다. 저성장과 장기불황이 이어졌지만 이에 따른 고용악화와 재정악화를 정부는 막지 못했다. 국가신용도가 급락하고 사회갈등도 심화됐다. 서구 국가들이 직면했던 이런 상황을 두고 새뮤얼 헌팅턴 같은 영미권 학자들이 통치불능이라 개념화했다. 우리나라도 60~61년의 제2공화국이 통치불능 상황이었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서구적 의미의 통치불능이 아니다.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된 이집트나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던 태국처럼 정부가 최소한의 사회안전을 유지할 능력이 없었다는 것이다.”

-통치불능을 정의하는 기준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면.
“성장둔화, 대량실업, 재정위기의 3대 문제가 터진 가운데 정부가 현안을 해결하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를 뜻한다. 그 원인을 두고 헌팅턴은 ‘과잉 민주주의’를 든다.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민들의 소득이 올라가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이익집단들의 요구가 폭증했지만 정부가 이를 감당할 능력이 없어 통치불능이 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70년대 영국은 노조의 힘이 너무 커져 ‘영국을 지배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노조’란 말까지 나왔다. 정부가 노조가 요구하는 내용을 실현할 힘이 없고, 그렇다고 타협을 도출하지도 못하면서 ‘영국병’으로 상징되는 통치불능 상태가 발생했다.”

-한국은 어떤 점에서 통치불능으로 분류되나.
“한국은 80년대까지 성장률이 9%였고 87년 민주화 이후에도 6~7%의 성장률을 보였다.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구가한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러다가 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성장률이 4%대로 떨어졌고, 이명박정부 이후엔 3%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하락했다. 성장이 둔화하면서 청년실업을 비롯한 대량실업과 국가부채 증가 추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여야가 내용 면에선 아무 차이가 없는 정책을 갖고 극단적으로 대립해 국정마비가 일상화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도 통치불능 상태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서구 국가들은 자본주의 황금기에 복지국가 체제를 어느 정도 완성했지만 한국은 황금기 끝물인 97년 외환위기 이후부터 복지정책이 본격적으로 개시됐기 때문에 부담이 훨씬 크다는 점이다.”

-한국의 통치불능이 서구 국가들의 그것과 다른 점이 또 있나.
“북한 문제와 동북아 군비경쟁으로 인해 우리의 국방비용이 서구 국가들에 비해 큰 점과 과도한 지역주의로 인한 사회갈등도 부담이다. 더 큰 부담은 선거제도다. 서구 국가들과 달리 소선거구제를 하다 보니 대결정치가 일상화되는 양당제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도 양당제의 영국이 다당제를 해온 독일 등 대륙국가들에 비해 ‘반대를 위한 반대’ 식의 대결정치를 해 왔다. 그래서 영국이 복지국가의 원조이면서도 내용은 대륙국가들에 못 미친다. 역시 양당제인 미국도 자본주의 쇠퇴가 시작되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부터 공화당과 민주당의 적대정치가 본격화됐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다당제 국가들에선 보기 힘들다. 다당제 비판자들은 정당들 간에 연정이 구성되기 어렵거나, 시간이 걸려 국정에 지장이 온다고 주장하는데 그렇지 않다. 다소 시간이 걸려도 일단 연정이 구성되면 정당들과 정부 간에 합의가 잘 이뤄져 국정이 안정된다. 다당제라니까 당이 수십 개씩 생기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 정책결정에 영향을 끼치는 정당 숫자는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래선지 우리 정치권에도 독일식 다당제 모델 연구 붐이 일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보다 훨씬 화합적이라고 평가하는 기사를 봤다. 그러나 두 정치인의 성향이 아니라 양국 정치구조의 차이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독일은 영국과 달리 어느 1당이 과반수 의석을 획득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현재도 보수정당인 기독민주당이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과 대연정에 합의했다. 기민당은 지지기반인 기업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민당이 요구해온 최저임금제 도입에 찬성했다. 사민당도 지지기반인 진보단체들의 반발을 억누르고 기민당이 요구한 부자 감세를 받아들였다. 이렇게 양측이 한발씩 양보해 연정을 성립시킨 것이다. 반면 양당제가 지배해온 영국의 대처 전 총리는 야당인 노동당과 늘 대립하며 정치를 해야 했다. 이러니 메르켈이 대처보다 더 화합적인 리더로 비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다당제에서 반대파 의견이 더 많이 수용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소선거구제 민주주의에선 적대정치가, 비례대표제 다당제에선 합의정치가 가능한 이유다. 독일정치는 미래 정치의 비전을 보여준다. 연정을 하면 양당에서 극단세력이 떨어져 나간다. 중도 수렴 강화현상이 생기는 한편 체제에 불만족한 소수파들은 서로 연합해 또 다른 정당을 만들어 도전한다. 정치의 선순환이라고 볼 수 있다.”

-연정 구성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그사이 터진 현안은 어떻게 해결하나.
“양당이 급박한 현안을 두고 합의를 못하면 연정이 깨져 선거를 한 번 더 해야 한다. 그러면 양당 지지기반이 반발해 표가 제3당으로 갈 우려가 커진다. 따라서 1당과 2당은 가급적 합의를 끌어내 연정을 구성하는 게 유리하다. 이런 이유로 연정 구성이 생각만큼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대부분 정책에서 차이가 없는데도 무조건 싸우기만 한다. 철도 민영화 논란도 그런 사례다. 만일 다당제를 하는 서구국가였다면 이런 문제는 국회에서 논의해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이런 정당구조도 통치불능을 강화시키는 원인이다.”

-영국은 양당제 소선거구인데도 통치불능을 해결하지 않았나.
“영국에서 통치불능의 대표적인 사례가 대처 총리 집권 직후 석탄노조가 강행한 파업이다. 노조가 1년2개월 넘게 파업했지만 대처는 초강경으로 대응한 끝에 굴복시켰다. 그 뒤 영국 경제가 회복됐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답이 갈린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성공했다고 하지만 중도파와 진보주의자들은 영국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비판한다. 대처 이후 영국은 ‘두 개의 나라’가 됐다는 말도 나왔다.”

-그러면 영국은 통치불능 극복에 실패했나.
“영국은 독일처럼 다당제가 아니어서 정부가 강압적으로 노조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노조국가화’를 막아낸 점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가 사회에 자꾸 개입하면 국가 자체가 비대화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처의 대응은 통치불능의 해소에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적대정치가 특징인 영국의 한계였다. 하지만 그 뒤 총리가 된 토니 블레어가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결합된 제3의 길을 추구한 게 통치불능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정부가 중도노선을 취하면서 여러 현안에서 여야 간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독일은 성공적 모델인가.
“영국은 대처 전 총리의 신자유주의식 개혁에서 보듯 적대정치로, 독일은 헬무트 콜?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의 연정 정치로 각각 통치불능을 돌파하려 했다. 영국 입장에서 보면 독일은 복지 등 주요 현안을 빨리 해결하지 못하고 질질 끄는 것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통치불능을 해소하기 위해선 영국식 양당제보다는 독일식 다당제가 더 낫다고 본다. 독일과 영국이 문제 해결에서 성과가 비슷했다고 하더라도 한국은 지역주의와 북한문제, 미숙한 복지체제 등 더 나쁜 구조를 갖고 있어 독일형을 택하는 게 낫다.”

-한국도 독일식으로 다당제에 기반한 내각제로 가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고 본다. 87년 민주화 이후 소선거구제를 유지해온 우리 정치사를 보면 상당 기간 ‘여소야대’여서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대선에선 이기고, 총선에선 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자연히 대통령이 일을 하기 어려웠고, 정부가 조금만 잘못하면 금방 민심이 이반됐다. 게다가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여야 대결정치를 고착화시켰다. 이러니 정책이 다양해질 수 없었고 여야 간 타협도 어렵다.”

-그렇다면 87년 민주화 이래 한국은 지속적으로 통치불능이었다는 뜻 아닌가.
“당시는 우리 경제 성장률이 높았던 자본주의 황금기였던 점에서 통치불능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 다당제가 실현되는 방식은 어때야 하나.
“의석의 100%를 정당명부제에 따른 비례대표들로 뽑는 게 좋다. 지역 이익을 앞세우는 지역구 의원들 대신 각계 전문가나 계층을 대변하는 비례대표들이 국회를 구성하면 국회는 진정한 정책의 대결장이 될 것이다. 가장 나쁜 건 제2공화국이 채택한 ‘소선거구와 연계된 내각제’다. 이는 권력지향적인 의원들로 구성된 의회와 무능한 정부가 국정혼란을 부추기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권력구조를 개편하지 않으면 통치불능은 해결할 수 없는가.
“단정적으로 말할 순 없지만 불가능하다고 본다. 양대 정당이 국회를 독과점하며 대결정치로 일관하는 구조로는 통치불능을 더욱 부추길 뿐이다. 다당제를 실시해야 정부의 능력이 커지고 소수파도 포용할 수 있어 통치불능이 해소된다. 지금의 정치구조에선 안철수 의원 같은 중도를 표방하는 세력도 민주당을 앞서는 순간 여당과 ‘정쟁을 위한 정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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