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마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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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후드득. 후드득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창을 열고 내다본다. 후박나무 잎사귀가 흔들린다. 온통 수런수런 하는 것 같다. 마치 오래도록 끊어졌던 수도에 물방울이 맺힐 때처럼 생기가 돈다. 한 조각 마당의 초목들이 그렇거늘. 저 메마른 들은 어떻겠는가.
그러나 비는 다시 오는 듯 마는 듯. 날씨는 무덥고 산천은 목말라 있다. 신문에서 보는 가뭄과 싸우는 사람들의 모습은 여간 안타깝지 않다. 소나기라도 한차례 지나가면 온 천지의 가슴은 한결 후련할 것 같다. 두레박의 물을 조심조심 옮기며 논바닥에 붓고 있는 사람들의 광경은 보는 사람의 목까지도 마르게 한다.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 비는 올지라도 한 새 왔으면 좋지』소월의 시 한구절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의 계절풍 지대에 들어 있다. 이 지대에선 1년을 주기로 해서 계절풍의 방향이 변한다. 따라서 비도 이 방향의 영향을 받아 오간다. 대륙에선 여름이면 해상에서 육지로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여름에 비가 많다. 겨울이면 대륙에서 바다로 바람이 붙어 비는 적고 춥다.
우리의 생활은 이런 계절의 습관에 익숙해 있다. 따라서 계절의 그와 같은 질서가 무너지면 생활의식의 질서까지도 무너지는 것 같다. 여름 네 비가 적으면 농토도 메마르지만 우리의 마음도 그에 못지 않게 각박해 진다. 계절의 민감한 영향이 우리의 마음속에까지 번져 온다. 가뭄이 들면 공연히 사람들의 인정도 삭막해지는 느낌이다.
또 농사에 의존해 살아온 습관도 그런 절박한 감정을 유달리 갖게 한다. 계절이 고르지 못하면 마음들은 어딘지 불안하고 초조해 지는 것이다.
서양에는 우계가 따로 없다. 우계라는 말은 있지만, 실상 비는 1년 중 때없이 내린다. 하지만 이들의 농사는 그렇게 자연에만 의존해 있지는 않다. 관개시설하며 농지의 구획은 과학화되고 또 전천후화 되어있다.
정작 계절에 민감해 그 「리듬」을 따라 사는 우리들이 그런 대비에 약한 것은 깊이 반성해 볼일이다. 계절을 실용적인 환경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감상적인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직 비의 예보는 멀다. 오는 듯 마는 듯하는 비는 지나가 버리지나 않을지, 한결 더 목이 마르고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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