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문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우리나라 속담에 보면 서울과 시골은 분명하게 갈라져 있다. 『시골 깍정이 서울 곰만 못하다』는게 있다. 『서울이 낭이라니까 과천서부터 긴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서울 인심이 매우 사납다는 표현이다.
『이지러진 방망이 서울 남대문에 가니 팩했다』는 속담도 있다. 『서울에 가야 과거에 급제하지』하는 것도 있다,
이래서 서울과 시골과의 대립도 여간 심한게 아니다. 『서울 놈은 비만 오면 풍년이란다』고 비웃는게 있다. 『서울 놈의 글 꼭질 모른다고 말 꼭지야 모르랴』는 것도 비슷한 울분에서 나온 말이라 여겨진다.
확실히 옛날에는 두개의 나라가 있었다. 서울과 시골의 옛날이래야 그리 오랜 얘기도 아니다. 한국사회의 이지러진 표정은 이런데서부터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일제시대에 이르러 여러 작가들은 서울과 시골을 대립된 「이미지」로만 그려내기를 잘했다.
서울은 출세와 타락과 「하이칼라」와 위선의 세계로 흔히 그려지고 시골은 이와 정반대 되는 순박한 것으로만 그려냈었다.
이광수와 같은 계몽운동의 작가마저도 시골을 미화하기를 잊지 않았다. 심훈이 시골을 다시없이 아름다운 고향으로 그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고 할까.
그러나 시골이 서울보다 더 좋은 곳도 아닐 것이며, 서울이 시골보다 꼭 추악해야만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시골이 아름답다고 보는 것은 향수가 곁들인 때문이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다룬 시골이 「리얼리티」를 잃고, 또 작중에 나오는 농민들이 제대로 부조되지 않은 것은 「시골」을 파악하는 현실감각이 부족한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우기 우리네 농민문학을 이지러뜨려 놓은 것은 지나친 계급의식의 강조였다. 이리하여 수탈하는 지주의 서울과 수탈되는 농민의 시골과는 더욱 대립되는 「이미지」로 뿌리 박혀만 갔다.
따지고 보면 「농민문학」이라는 이름이 있는 것부터가 멋적은 일이기도 하다. 하기야 손쉽게 말해서 우리네 인구의 태반을 차지했던게 농촌이자 농촌인구였다. 그러니 그들을 위한 문학이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논리도 나옴직 하다.
또한 우리네 대표적 작가들은 모두 농촌을 등지고 줄곧 서울만을 그렸다. 그렇다고 그들이 현실을 등진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농촌을 그려야만 현실에 눈뜬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이제는 그나마 시골도 모습을 바꿔 가고 있다. 성황당 고갯길에 긴 골통대를 물고 앉아 있는 시골 영감님 대신에 새마을 지도원이 있고, 야릇하게 향수를 뿜어내는 퇴비의 냄새 대신에 「비닐·하우스」의 화학약품 냄새가 감도는 농촌이다.
그것은 시골은 아니다. 그 속에서 사는 사람도 시골 사람은 아니다. 그들의 어버이들이 제대로 작품속에서 살아본 적도 없이 농촌문학은 명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