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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크리스마스, 메리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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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익명의 기부 천사는 올해도 성탄절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50~60대로 추정되는 남성은 서울 명동 입구에 설치된 자선냄비에 수표 1억원이 담긴 봉투를 넣었다. 이 신사는 작년과 재작년에도 1억원이 넘는 거액을 이곳 자선냄비에 남겼다. 신사는 봉투를 넣으면서 구세군 관계자에게 “좋은 일을 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죠” 하며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또 “딸들에게 기부를 하러 간다고 말하고 왔는데 인증샷을 찍고 싶다”며 사진을 찍고 갔다는 것이다. 그의 눈물과 인증샷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기쁨과 즐거움의 발로였으리라.

 올 연말 기부의 모습은 예년보다 더 다채롭고 넉넉해진 느낌이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기부 자체를 즐기는 지상의 천사들이 많아졌다. 서울종합예술학교 학생들은 대학병원 로비에서 성탄절 나눔 콘서트를 열었다. 음악을 통해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주는 재능 기부 행사를 펼친 것이다. 젊은 층에서는 걷는 것만으로 기부할 수 있는 스마트폰 자선 앱이 인기를 끌고 있다. 10m를 걸을 때마다 기업후원금 1원씩이 쌓인다. 적립금은 가난한 장애인들에게 의족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인터넷 쇼핑몰을 흉내 낸 기부 사이트도 등장했다. 가상의 물품기지에 들어가 책상을 선택하면 아프리카 학교에 실제 책상이 배달된다는 것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주관하는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가 경사를 맞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창립한 지 6년 만에 400번째 회원이 탄생한 것이다. 기부 문화가 지금보다 더 확산되기 위해서는 고액과 소액 기부 모두가 늘어야 한다. 또 기부 방식은 더 편하고 다양해져야 한다. 이런 면에서 올해 성탄절을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부자와 청년, 서민들의 모습은 우리 기부문화가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기는 어둡고 정치는 여전히 답답하다. 하지만 사랑의 열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치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밝다.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기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