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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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구엔·반·티우」월남 대통령은 멀고 긴 사은여정 중에 한국을 방문했다. 시민들이 깊은 잠에 들어있는 12일 상오 1시45분에 입경. 우리는 서운하게도 그의 미소짓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이번에 미국·서독·「이탈리아」·한국·대만 등을 방문한다. 이제 대만을 마지막으로 지구를 한바퀴 도는 그의 여행은 끝난다.
「티우」대통령은 미국을 들른 길에 그 나라 시민들에게 따뜻한 인상을 보여주었다. 비록 전화를 이끌어 온 「장군」대통령이지만, 그의 특유한 미소는 그런 「이미지」를 어느 정도 가시게 했다. 귀환 포로의 가정을 방문해서 위로를 하는가 하면 「텍사스」주의 고 「존슨」대통령 묘를 찾아가 묵념도 했다. 『어느 역사를 보아도, 전쟁에는 추한 일면이 없지 않다. 우리는 유독 이치나 논리에 맞지 않는 전쟁을 치러온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티우」대통령의 이런 연설은 그에게 비판적이던 미국 양원에 좋은 인상을 남겼다. 「워런·버거」미 대법원장도 의외인 듯 『그는 호전적인 사람은 아니었다』는 말을 했다. 하긴 10년간 미국 시민은 수백억 「달러」의 전비를 감당했으며, 또 5만6천여 명의 인명을 월남 전장에 바쳤다.
「로마」교황과의 악수장면도 흐뭇하다. 「바오로」6세는 월남 종전을 기회 있을 때마다 호소했었다. 이미 월맹의 「레·둑·토」도 그를 방문해서 사의를 표한 바도 있었다. 그러나 「티우」는 그런 교황을 겸손하게 찾아보았다. 그가 「가톨릭」신자라는 사적인 이유 때문은 물론 아닐 것이다.
우리 나라는 월남참전에서 4천명 가까운 인명을 잃었다. 후세의 역사엔 어떻게 기록될지 모르나 우리가 힘껏 도와준 것은 사실이다. 역사상 우리는 타국의 원병을 간청한 일은 있었어도 우리 군대가 외국에 건너가 용명을 떨친 일은 없었다.
1592년 임신왜란 때 정곤수라는 사람이 진주사로 명나라에 들어가 원군을 청했었다. 난이 가라앉고 5년만에 그는 우리 나라의 사은사로 다시 명나라에 가서 큰절을 했었다. 그 후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는 더욱 친밀하고 원만했었다.
역사는 바뀌어, 우리도 외국의 사은사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삼 월남의 안정과 발전을 염원하게 된다. 그 나라가 계속되는 혼미로 역사의 미아가 된다면 우리의 보람도 사라지고 만다.
오랜 전화에 시달린 국민들에게 생의 기쁨과 보람을 주는 선정을 기대해 마지않는다. 실로 모든 나라의 국민이 원하는 것은 마음의 평화와 삶의 보람이다. 그것은 전쟁이나, 강요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진실한 민주주의의 건설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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