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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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학가는 요새 졸업「시즌」으로 축하의 말 잔치가 한참이다. 역시 졸업이란 예나 지금이나 즐거운 것인가 보다.
대학의 역사는 퍽 오래 된다. 또 서양보다는 오히려 동양이 더 길다.
전설상으로는 제순이 세웠다는「상상」이 시작이다. 그리고 하의「동서」,은의 「우학」,주의「동교」는 오늘의 대학과 맞먹는 교육기관이었다. 일 설로는 또 주때 「오학」이 있고 중앙에 있는 것을 「대학」이라 했다 한다.
한 무제 때에는 관리 양성을 위해 대학을 세웠었다. 처음에는 오경박사 아래 50명의 제자가 있었으나 후한 때에는 그 수효가 5만 명이나 됐다고 한다.
수당 시대에는 대학의 교과목이 대·중·소경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효경>과 <논어>를 1년간씩 배우고, <서경><춘추>등을 1년 반씩, <역경><시경>을 각각 2년 씩, <예기><춘추 좌씨전>을 각 3년 이내에 수득하도록 되었다. 만약에 9년간 재학하고도 끝내지 못하면 퇴학당하도록 되어 있었다.

<소학>엔 8세 내지 13세에 들어갔으며, 이른바 『군자의 육예』곧 예·악·사·어·서·수를 배웠다.
여기서는 손쉽게 말해서 송의 주자가 찬 했다는 <소학>이라는 책이 가르치고 있는 바 소제·응대의 예절 등을 배웠다.

<논어>에 보면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는 구절이 있지만, 옛날 대학도 15세 아니면 18세에 들어가는 게 보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사」라는 말도 옛날부터 있었다. <의례>의 주에 보면 학사란 상서·대학·소학에서 배운 사람을 말했다. 육조시대에는 국가에 전례나 편찬사업 등이 있는 경우에 징집된 「문학사」를 가르치게 되었다.
당대에 이르러는 이들을 대기시킨 곳을 「학사원」이라 했고, 또 이들을「한림학사」라 불렀다.
당나라 이후에는 이 한림학사 이외에도 고관이나 대학자를 높여서 부른 칭호로 「학사」또는 「대학사」라는 게 있었다.
물론「학생」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리고 학생의「생」은 초목이 자라서 땅위에 솟아 나온 모습을 나타낸 상형문자였다.

<사기>에는 한나라 이후 유학에 뜻을 둔 사람을「생」이라 했다고 적혀있다. 말하자면 학문에 뜻을 둔 사람을 특히 「학생」이라 했던 것이다.
오늘의 대학은 물론 옛날과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도 전혀 다르다. 사서삼경을 배운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부르지 않게 된 오늘인 것이다.
그러나 「학생」이 뜻하는 바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요새도 학생이란 땅위에 머리를 쳐 올린 초목의 싹이나 다름없다.
그러고 보면 학사도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는 없다. 또 없어야 할 것이다.
새 학사들이 사회에 나오는 게 반가운 것은 이런 뜻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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