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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피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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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병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생명에의 애정은 인간의 상정이기도하다. 타인의 병일지라도 걱정스러워 지는 것은 당연하다.
경아는 웬일인지 지난해 12월부터 팔과 다리가 불편했다. 근육의 군데군데가 굳어지면서 피부의 색깔도 백색으로 변했다. 피부는 차차 탄력까지 잃어갔다. 정말 무서웠다. 이렇게 온몸이 화석처럼 굳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 잡혔다. 경아는 이제 겨우7살의 시골소녀이다. 그의 아버지는 허둥지둥 서울로 경아를 안고 왔다. 진단의 결과는 경피증 이었다. 일명 공피증이라고도 한다. 학명은 Scleroderma.「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Sclero는 「딱딱하다」(hard)는 뜻이며 derma는 「피부」를 의미한다. 「공피」란 말과 같다. 이 병은 진전이 느리며, 오랜 시간을 두고 마치 수목이 고사하듯이 인간의 생명현상을 하나, 둘씩 마비시켜 간다.
「모리스·피쉬베인」편 『의학백과사전』을 보면 주로 20세와 40세 사이에서 그런 병을 볼 수 있다. 특히 여자의 경우가 많다. 원인은 아직 불명이다. 많은 의학자들은 신경조직상의 어떤 상황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개의 경우 척수의 어떤 부위에 이상이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발병률은 백만 명 중의 1명이라고 한다. 불행 중에서는 보기 드문 불행이다.
바로 그 불행의 주인공인 경아 양은 외동딸이다. 그의 아버지는 시골 우체국에서 일하는 체신공무원. 다행히도(?) 그 소녀의 애화는 세상에 소문이 났다. 세정은 곳곳에서 따뜻하게 우러나왔다. 우선 우편집배원들이 노고도 잊고 경아의 구제운동에 나섰다. 스스로 박봉의 일부를 내놓기도 했다. 이래서 장관도 움직이고 대통령도 움직이게 되었다. 그 소녀의 아버지는 서울로 전근도 되었다. 서울의 유수한 병원에서 병구완을 하려면 직장도 서울에 있는 편이 좋다.
경아는 이제 절망의 문전에서 생명의 약동을 보게된 것이나 다름없다. 의학자들은 전기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회복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일본에서 그 기구를 가지고 달려온 의사도 있다. 『붕대는 인간이 감고 치료는 신이 한다』는 말이 있다. 하늘의 섭리는 그 소녀를 절망에서 구해줄지도 모른다. 인간의 선은 우주의 만물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신은 따뜻한 그 세정을 외면하지 않을 것도 같다. 흘려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직업인의 공동의식, 아니면 동인의식 같은 것이 의외로 차가운 것이 이 세상이다. 새삼 우리 인간의 유대감 같은 것까지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이 이웃의 괴로움을 돌보지 않는 세상이라면 그야말로 말세이다. 경아 양의 경우는 그런 우수 속에서 따뜻한 미소를 짓게 해준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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