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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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그여자는 정신의 귀족이다. 그와 대화를 나눌때는 신선한 채소향기 같은 것을 느낀다. 그를 처음 만나던 십여년전부터 그런 들꽃향내같은것을 늘 느껴왔고 어느새 내 살에도 그런 향내가 옮겨오는 것을 느끼게된다. 그의 남편은 조금 가난한 반면 영원한 자유인이고 소박한 애처가인 듯 싶었다.
앓아 드러누웠던 아내가 어느 이른봄 『개나리 꽃이 보고싶어』라고 무심히 말했더니 그것을 공들여 듣고서 저녁 퇴근길에 뛰어와 방문을 열고 꽃든 손을 쓱 내밀며 『자, 개나리꽃』하더라는 얘기를 듣고 『세상에서 제일 큰 「다이어」 몇 「캐러」보다 더 좋은것을 받으셨읍니다』나는 말했었다.
중요한일은 두사람을 평가하는 우리네 시선이다. 물질의 노예에게는 개나리꽃쯤 안보일수있다.
『그까짓 개나리꽃 갖구서 뭘』하고 받을 여자였다면 공들여 듣고 사올 남편도 되어질수없다. 그런일을 소중하게아는 아내의 이해위에서만이 그남편은 그대로의 행복을 찾을수 있을 것이다. 큰것을 받지않으려는데서 사랑이라는 거대한 선물을 받게된다.
어느날 그가 집으로 오르는 언덕길에서 정교하게 조각된 목조가구를 실은 수레를 보면서 『저가구가 내집으로 들어간다. 정성껏 날라다 방에 옮겨 놓는다…』 행복스럽게 상상하는동안 수레는 다른 골목으로 사라지고 아름답게 쌓아가던 공상도 깨어지고 말았다는 얘기를 들려준 적이있다.
어떤날 그는 오랜만에 여고 동창회에 나갔었다. 그는 그자리에서 계를 깨뜨린 동창중의 하나가 자기집 가구들을 내어놓고 빚진이들에게 돈대신 가져가주기를 원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역시 동창생인 어느 여자가 녹음기라도 집어온 얘기를 흥겹게 지껄일 때 그는 구토증나는 괴로움에 잠겼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그 얘기를 들려주자 남편은 『왜 듣고만 있었소. 당장가서 말해주시오. 그친구에게 집어온 녹음기를 빨리가서 돌려 주라고』성을 내더라는 것이다. 이런이들이야말로 굳센사람들이 아닌가. 이런이들을 비웃는자는 없는가. 이런 이들을 소중히여기고 존경하는 사회는 더욱 굳센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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