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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지도? 늘씬한 여자 다리? 손잡이가 예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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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호 14면

1884년 토리노에서 마시는 법이 발명된 이후 이탈리아 커피의 대명사가 된 에스프레소는 미세하게 분쇄한 커피 가루에 고압·고온의 물을 통과시켜 추출해 내는 고농축 커피다.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 커피가 나오기 전까지 세상은 커피 열매를 갈아서 텁텁한 상태로 물에 타 마시는 터키식 커피를 마셨다.

비알레티 모카포트 80주년 기념전에 가보니

국민의 49%가 하루 한 잔씩은 꼭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신다는 이탈리아 가정에 적어도 하나씩은 있는 것이 비알레티 회사의 모카포트, 이름하여 모카 익스프레스(Moka Express)다. 이탈리아인들이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쉽게 즐길 수 있게 된 건 순전히 모카 익스프레스 덕분이다. 모카 익스프레스 발명 80주년을 맞아 비알레티는 11월 27일부터 12월 8일까지 밀라노 라 페르마넨테 전시장에서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비알레티 모카포트에 아이디어가 된 세탁기

이탈리아 상징 디자인으로 선정
모카 익스프레스는 1933년 탄생했다. 이탈리아 북부 오르타 호수 근처의 크루시날로라는 작은 도시에서 알루미늄 공장을 운영하던 알퐁소 비알레티는 부인이 리시부즈(lisciveuse:증기의 압력과 물의 삼투압현상을 이용해 끓는 물이 중앙의 관을 통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며 빨래를 돌려 삶아 빨게 만든 일종의 세탁기)를 사용해 집에서 빨래하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었다.

모카 익스프레스는 뉴욕 모마미술관에 상설 전시되었고 이탈리아 외무부가 선정한 ‘이탈리아를 빛내는 디자인 100’에 선정됐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는 핵에너지·라디오·MP3·전화·건전지·스쿠터·연소엔진·헬리콥터·플라스틱과 함께 세계를 바꾼 10개의 이탈리아 발명품 중의 하나로 소개됐다.

모카 익스프레스는 우러난 커피가 담기는 상부, 끓일 물을 넣는 하부, 그리고 이 둘 사이에 커피를 담는 바스켓의 세 부분으로 나뉜다. 상부 밑부분에는 커피를 걸러내는 필터가 부착돼 있다. 바스켓에 닿지 않을 정도로 하부에 물을 넣은 뒤 커피를 담은 바스켓을 뚜껑처럼 삽입한다. 바스켓에 커피를 얼마만큼 넣느냐가 커피의 맛을 좌우하는 노하우다. 누구는 커피를 꾹꾹 눌러 주라고 하고 누구는 누르지 않고 작은 산처럼 소복이 쌓은 후 상부를 닫으라고 하지만 정답은 없다.

상부를 닫을 때 너무 꽉 닫으면 나중에 열기 힘들고 또 살살 닫으면 물이 끓어 올라올 때 밖으로 새어 나올 수 있다. 조립이 끝나면 가스 불이나 전기레인지에 올려 끓이는데 가스레인지의 불꽃이 너무 세면 손잡이 아래가 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하부에 담은 물이 거의 다 올라와 모카포트에서 보글보글 소리가 나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잔열을 활용한다. 보글거리는 소리가 더 나지 않으면 완성! 소주잔만큼 작은 에스프레소잔에 따라 마신다.

풍만한 여인의 치마 입은 모습 형상화
방문객들은 14세기부터 현재까지 유럽에 수입되는 커피의 원산지와 종류에 대해 알아보고 지난 6세기 동안 커피가 만들어 낸 전설적인 이야기들을 읽으며 모카의 세계로 들어간다. 모카 익스프레스가 나오기 전에 사용된 수많은 크고 복잡한 커피제작기도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

전시장 중앙의 투명 실린더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전시된 오브제는 바로 1933년 알퐁소 비알레티가 제작한 모카 익스프레스의 첫 프로토 타입. 풍만한 여인의 모습이 절로 떠오르는 모양새는 아니나 다를까 치마 입은 여인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80년간 바뀐 디자인 변천사도 재미있었다. 본체 모습은 거의 변함이 없고 손잡이와 뚜껑 부분의 디자인만 조금씩 바뀌었다(현재 사용되는 손잡이 형태는 마치 늘씬한 여인이 치마를 걷어 올리고 각선미를 드러내며 무릎을 구부린 것 같다). 이 섹션에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일반에게 공개된 적이 없던 모카 익스프레스의 특허도면 및 자료들의 원본과 함께 알퐁소에게 영감을 주었던 당시의 세탁기도 볼 수 있었다.

다음 섹션에서는 공업화된 비알레티의 발전상을 볼 수 있었다. 알퐁소의 아들 레나토가 사장이 되면서 대량생산체제가 시작됐다. 일찍부터 광고의 힘을 간파한 레나토는 자신의 이미지를 이용해 콧수염 난쟁이 캐릭터를 만들고 광고를 시작했다. 벽에 부착된 1950~60년대의 광고는 직접적이고 단순하며 교육적이었다. 집에서 모카 익스프레스로 커피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어떻게 만드는지, 누가 마시는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했다. 멋진 여인들이 광고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콧수염 난쟁이 캐릭터가 안내자 역할을 했다.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 사용법을 미키마우스가 안내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가장 흥미로웠던 곳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정판과 실험적 샘플 모카포트들을 감상할 수 있는 섹션이었다. 비알레티의 캐릭터를 입체형상으로 만들어 커피를 받는 부분으로 사용한 것, 몸통을 이탈리아 삼색기의 색상인 녹색·흰색·빨간색으로 칠하고 손잡이는 장화처럼 생긴 이탈리아 모양으로 제작한 것 등 시중에서는 볼 수 없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가득했다. 마지막 섹션은 1993년부터 현재까지를 소개하는 코너였다. 프란체스코 란조니 사장의 지휘하에 국제적으로 성장한 비알레티의 과거·현재·미래를 볼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일어난 캡슐커피 붐에 한동안 힘든 시기를 보냈던 비알레티가 자신만의 캡슐커피머신과 다섯 가지 맛의 커피캡슐을 제작, 캡슐커피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기까지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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