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배척당하는 '독불장군'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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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망신을 당할 판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프랑스가 10일 이라크전에 대한 거부권 행사(veto)를 공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에 대해 상임이사국들이 이처럼 내놓고 반발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공산권이 무너진 뒤 유일한 수퍼파워로 부상한 미국 입장에선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래도 현실은 어쩔 수 없는지 부시 대통령은 10일 백악관에서 두문불출하면서 장쩌민(江澤民)중국 국가주석.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 등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전화를 걸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아프리카 기니의 외무장관을 만나고 다른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대표들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젠 배보다 배꼽이 커진 상황이다. 이라크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유엔 및 유럽 동맹국들과의 갈등이 전쟁 그 자체보다 더 심각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미국이 앞마당처럼 여겨왔던 멕시코가 등을 돌리고, 고분고분하던 터키마저 기지 허용을 불허하는 등 제3세계도 미국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우격다짐 외교'는 그동안 적지 않은 비판을 받아왔다. 동맹국들을 '늙은 유럽'이라면서 비웃고, 곳곳에서 반전 시위가 벌어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다 낭패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외교적 곤경은 그 어떤 국가도 독불장군으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제사회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논리를 제시하지 못하면 미국 같은 초강대국조차 '왕따'를 당하는 시대인 것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외교 역량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앞날이 좌우될 수 있다는 교훈이기도 하다.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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