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 김성룡의 사각사각] 추억의 그 극장 … ‘다음 프로’는 없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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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처음 사귄 여자친구와 함께 본 영화는 그 유명한 ‘시네마 천국’이었습니다. 사귄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습니다. 서울 강남역 인근 뤼미에르 극장이었죠. 아담한 극장 스크린에선 엔리오 모리코네의 음악과 함께 토토와 알프레도의 우정이 펼쳐졌지만 갓 스무 살 청년은 옆자리에 앉은 여자친구의 뒤척임, 숨소리 하나까지 신경을 쓰느라 진땀깨나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여자친구에게 ‘시네마 천국’ OST를 선물했습니다. 제 돈을 주고 산 첫 CD였습니다. 당시 전 CD 플레이어가 없었거든요.

몇 달 전 이 영화가 재개봉했단 얘기를 듣고 풋풋했던 그녀와 그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함께 영화를 봤던 극장은 아쉽게도 몇 해 전 문을 닫았더군요. 요즘은 극장 대부분이 멀티플렉스 상영관이라 아무 극장에 가도 웬만한 영화는 다 볼 수가 있죠. 그러다 보니 영화는 기억에 남아도 극장에 대한 추억은 별로 없는 같습니다.

사진은 서울 명동의 중앙시네마입니다. 다음 상영작 포스터가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있습니다. 이 극장도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밀려 몇 해 전 문을 닫았습니다. 많은 사람의 추억도 함께 사라지고 말았지요.

오늘 퇴근하면 오랜만에 그녀에게 선물했던 CD를 들어야겠습니다. 지금은 제 아내가 된 그때 그녀와 함께 말입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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