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달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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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오늘, 명화로 장식된 새해 달력을 하나 얻었다.
금박으로 아름답게 새겨진 1973년이란 글자가 가슴에 쿵 소리를 내며 부딪쳐오는 것만 같았다.
한 장 남은 묵은 달력 옆에서 달력을 나란히 걸어 놓았더니 아홉 살 된 딸아이가 손뼉을 치며 좋아라 한다. 『아이 좋아라, 새해다, 새해…. 어디 좀 보자. 내 생일이 이번엔 무슨 요일인가 봐 둬야지.』
딸아이에게는 묵은해가 어서 지나고 새해가 닥쳐온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랴. 나도 어서 어서 새해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려보던 어린 날이 있었지. 그러나 지금은 해가 바뀌는 것을 겁내는 주름살진 엄마가 되었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를 죽는 것과 같다고 누군가 얘기했다.
많은 물이 하나 가득 채워진 그릇처럼 그 다시 오지 않는 하루를 가득 채워 살아야만 할텐데…. 어떻게 사는 것이 내 마음에 후회 없는 만족한 삶일까.
남편에겐 좋은 아내. 아이들에겐 좋은 엄마…. 우선 내 본분만이라도 다 해야할텐데 그것도 어려운 일이다.
또 그것만으로 내 일생은 만족해야만 하나.
새 달력은 내게 끝없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금박으로 된 『1973년』은 말없이 의연하기만 한데….
작년 이맘때도 나는 이상한 호기심의 상자를 앞에 둔 판도라처럼, 새 달력 앞에서 괜히 설레었다. 365일이란 날들을 한 묶음에 꿰어 후닥닥 열어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시장바구니를 든 채 아빠와 나의 토정비결을 보기도 했었지.
그러나 지나간 한해는 판도라의 상자 그대로였다. 「희망」이라는 요정 하나만이 날개를 파닥이고 있으니 토정비결의 문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다시 새해. 어른 앞에 엎드려 세배하는 마음으로 내 앞에 다가오는 귀한 한해를 맞이해야겠다.
김사라(경북 대구시 대명동 2139의 사택 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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