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7)제29화 조선어학회 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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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예심판결>
이극노 이윤재 최현배 이희승 정태진 김양수 김도연 이우식 이중화 김법린 이인 한징 정렬모 장지영 장현식, 그리고 나까지 16명은 검사의 정식기소로 예심에 회부되었다.
기소이유는 치안유지법제1조에 해당하는 내란죄로 16명의 피의자들은 대역의 사상범으로고 각각 구치소 독방에 수감되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와는 달리 함흥형무소에 들어오자 전부 입은 옷이 벗겨지고 죄수가 입는 반물빛 홀 두루마기를 하나씩 주었다.
그 당시에는 치안유지법 위반자 등 내란죄 및 사상범과 같이 중대한 피의자들은 검사의 기소로 직접 재판에 회부되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에 예심이란 것을 받아야했다.
예심제를 둔 것은 표면상 사건을 신속히 처리한다는데 있으나 실제로는 피의자들을 되도록 장기간 구속하여 재판을 받기 전에 미리 톡톡이 골탕을 먹이려는 악랄한 속셈이었다.
실제로 그당시 예심을 핑계로 많은 우리 독립운동자들이 옥중에서 정식재판을 받기 전에 몇 해를 고생하는 예가 허다했다.
더우기 조선어학회사건은 그 자매기관 및 활동상황으로 보아 사건이 여러 가닥이 되고 관계자가 많아 경찰과 검사의 심문조서만해도 50여책이 넘었으므로 예심판사가 조서를 검토하는데만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기 때문에 이제 16명은 언제 열릴지도 모르는 예심판결을 기다리며 옥중에서 또다시 무료한 생활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내가 들어간 미결감에는 단 한사람 박병순이란 사회주의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평북영변농업조합사건으로 끌려왔다고 했는데 6개월간을 함께 있었다. 대부분 사상범인데도 구치소가 모자라 민족주의자 한 명과 사회주의자 한 명씩을 한 감방에 두는 듯 했다.
10월에 접어들면서 혹심한 추위가 몰아왔다. 거기다 극심한 식량난으로 수감자에게 주는 식사의 양도 나날이 줄어들었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10월과 11월 두달사이에 함흥형무소에서 약3백50명이 죽어나갔다고 했다.
12월8일 소위 일본이 이른바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날인 이날은 몹시도 추웠다.
나는 하루종일 춥고 배가고파 앉아 있을 수가 없어 서성거리며 온기를 모으느라고 하루를 보냈다.
바로 이날, 이윤재가 세상을 떠났다. 이윤재는 고문에 몸이 쇠약할대로 쇠약해져서 전에도 심문을 받으러 끌려갈 때 몇 번인가 도중에서 쓰러진 일도 있었다.
이윤재의 옥사소식은 이틀이 지난 10일에야 한국인 간수가 내게 귀띔을 해주어 알았다.
이윤재 나이 57세. 나는 조용히 무릎을 끊고 그의 명복을 빌었다.
다음해 1944년2월22일에는 한징도 또한 이윤재의 뒤를 따랐다.
한징이 무참히 죽은 소식도 겨우 간수의 입을 통해 알았다.
1944년4월에 접어들어서야 예심판사가 나타나 한 사람씩 불러내어 문초를 시작했다. 우리동지 14명은 대개 경찰서와 검사가 작성한 조서의 내용을 부인했으나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예심판사 「나까노」(중야호웅)는 『경찰서에서나 검사에게 모두 시인해 놓고 무슨 딴소리냐?』고 윽박질렀다.
비로소 9윌30일에 예심이 공결되었다.
검사의 기소를 받은 16명 중 이윤재 한징은 사망으로 기소자체가 소멸되고 장지영 정렬모 2명이 면소로 석방되었다.
나머지 12명은 정식재판에 회부되었다.
「나까노」는 예심종결 결정의 판결문에서 조선어학회를 독립단체로 규정하고 이에 따라 12명의 죄목도 개인별로 열거했다.
함흥지방법원 예심괘조선총독부판사 중야호웅이 내린 예심종결결정문의 주요내용 일부는 다음과 같다.
『조선어학회는 소화6년(1931년) 이래로 피고인 이극노를 중심으로 하여, 문화운동 중 그 기초적 중심이 되는 위에서 말한바, 어문운동의 방법을 취하여, 그 이념으로써 지도이념을 삼아 가지고 곁으로 문화운동의 가면을 쓰고 조선독립을 목적한 실력배양단체로서 본건이 검거되기까지 10여년이나 오랫동안 조선민족에 대하여 조선의 어문운동은 전개하여 온 것이니 시종일관 진지하고 변하지 않는 그 활동은 조선어문에 쏠리는 조선인심의 기미에 부딪쳐서 깊이 그 마음속에 파고들어 조선어문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일으키고 여러 해를 거듭해 내려오며 편협한 민족관념을 북돋워서 민족문화향상, 민족의식의 앙양 등 그 기도하는바 조선독립을 위한 실력신장의 수단을 다하지 아니한바가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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