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절반의 성공 거둔 아베노믹스 1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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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아베노믹스’가 1년을 맞았다. 20년간의 장기 침체에 맞서 인정사정 없이 무제한 양적완화와 엔화 약세를 밀어붙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베노믹스는 절반의 성공을 거두었다. 닛케이 주가지수는 50% 이상 올랐고, 엔화는 달러당 100엔대의 약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인위적인 정책에 따른 부작용도 적지 않다. 일본의 경상수지는 적자로 돌아섰고, 임금인상과 설비투자 증가율은 기대를 밑돌고 있다. 3분기 경제성장률도 전기 대비 0.3%로 가라앉아 아베노믹스의 약발이 다해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내년 4월에는 소비세율 인상이 예고돼 있어 자칫 ‘소비절벽’에 직면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장 큰 소득은 경제주체들 사이에 ‘한번 해보자’는 심리가 확산된 것이다. 아베노믹스조차 없었다면 일본 경제는 더욱 바닥 없이 추락했을지 모른다. 다행히 한국 경제는 아베노믹스 역풍을 비교적 잘 막아내고 있다. 일본과 경쟁 관계인 자동차·철강·기계·화학산업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게 사실이다. 엔화 약세로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 관광객도 크게 줄었다. 하지만 휴대전화·자동차를 중심으로 우리 기업들의 비(非)가격 경쟁력이 높아지고 해외 생산 비중이 늘어나면서 아베노믹스로 인한 타격은 당초 예상을 밑돌았다. 올해 우리 경상수지 흑자는 사상 최대인 63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아베노믹스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일본 정치권의 역할이다. 정치권이 앞장서서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긍정적으로 바꿔 놓았다. “윤전기를 돌려서라도 돈을 찍겠다”는 극약처방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이에 비해 우리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법안들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다. 발등의 불인 부동산 관련 법안들만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10일 겨우 통과시켰을 정도다. 이렇게 소비·투자심리를 위축시켜 놓고 경제가 살아나리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정치권이 ‘2류 경제·3류 정치’라는 비난에 펄쩍 뛸 일이 아니다. 일본에서 배워야 할 것은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