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김원치부장 입장 표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대통령과 전국 평검사들과의 토론회에서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검찰 수뇌부' 가운데 한 명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대검 형사부장인 김원치(金源治.60.사진)검사장은 10일 검찰 내부통신망에 '검찰 인사 개혁의 정체성에 관하여'라는 글을 올렸다.

A4용지 석장 분량의 이 글은 "최근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미 마음 속으로 사표를 썼지만 아직 사표를 내지는 않겠다"는 말로 시작된다.

그는 "28년간의 검사생활을 돌이켜 볼 때 한점 부끄럼없는 공인의 삶이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결코 정치권력에 줄을 대는 등 개혁 대상이 될 짓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金검사장은 이번 주 단행될 검찰 수뇌부 인사를 지켜본 뒤 거취를 정하겠다고 했다. 인사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경우 결연히 저항할 것이고 검찰청법이 보장한 정년(63세)까지 (검찰에)남아 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결심의 배경에 대해 "인사에서 밀리면 용퇴하는 것이 관행이지만,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치욕의 역사를 만든다 해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金검사장은 "오늘 새벽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소회를 적었다"고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을 소개했다. 이날 그의 입술은 심하게 터져 있었다. 새 정부의 인사 파격에 대해서도 그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장관이 인사를 할 때에는 총장과 긴밀히 협의해 온 것이 지난 50년간의 검찰 관행"이라며 "총장의 지휘권을 확립시켜 주고 장관의 정치색을 총장이라는 완충지대를 통과시켜 중립성을 담보해주는 합리적인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현 검찰 수뇌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지적을 염두에 둔 듯한 글도 남겼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6학년은 전원 실력이 없고 품행도 방정치 못해 유급시키고 4학년을 대거 졸업시켰다면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판단해 6학년은 졸업할 자격이 없고 4학년은 있는지에 대한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연히 이런저런 소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시 13회인 金검사장은 김각영 총장(사시 12회)의 퇴임으로 동기들과 함께 현역 최고참 검사가 됐다. 제주 출신으로 197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70, 80년대 각종 공안사건을 지휘한 검찰 내 공안.대공 전문검사다.

조지 패튼장군 같은 거만하고 자부심 강한, 그러나 명예와 불퇴전의 군인정신과 같은 정신을 갖춘 검찰인을 꿈꿨다는 그는 후배에 대한 다짐으로 글을 맺고 있다.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식견을 전달하는 일을 포기하는 스승들은 이 땅에서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 사표를 낼 때까지 어른으로서, 공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

김승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