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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1000곡 웃음 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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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한 노래만 2천곡이 넘는 가수 하춘화씨마저 마이크를 쥔 손이 부르르 떨리는 무대.

은방울 자매가 캔과 핑클의 노래를 부르고, 신세대 그룹 코요태가 '망부석'을 불러 젖히는 곳. 노무현 대통령이 한 인터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고 했던 그 무대. 바로 SBS '도전!1000곡'(일요일 오전 8시40분)이다.

노래방의 보급으로 가사를 외울 필요가 없게 된 이 시대에 반기를 든 '도전…'. 2년 넘게 가요 프로 중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비결이 뭘까.

#공포의 '시작 5분전'

지난 4일 오후 1시 SBS 등촌동 공개홀. 감도경 담당 PD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그의 노래에 맞춰 방청객들이 몸을 흔든다. 잠시 후 벌어질 '한판'을 위한 몸풀기라고 한다. '도전!1000곡'엔 밴드도 백댄서도 없다. MC 손에도 대본이 없다.

자연히 방청객들의 호응이 중요하다. 분위기가 고조되면 출연자들이 '오버'하게 마련이다. 평소 얌전한 이미지를 유지해 왔던 연예인이 막춤을 추는 일도 흔하다. 그 재미를 위해 제작진 역시 몸을 던지는 것이다.

같은 시간 분장실의 분위기는 딴판이다. 잔뜩 가라앉아 있다. 출연자들이 초조한 발걸음을 이리저리 옮기고 있다. 오늘 출연자는 가수 원미연.한경일.현진우.파이브, 개그맨 박성호, 방송인 이매리. 이매리씨는 아예 노래책을 세 장이나 찢어 들고 다니며 중얼중얼 가사를 외우고 있다.

신세대 트로트 가수 현진우는 "걱정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며 한숨을 내쉰다. 관록의 원미연마저 "어제 밤 3시까지 가사를 외우고 잤다"며 "무대 위에만 올라가면 머릿속이 하얗게 빈다"고 말했다.

"자! 5분 남았습니다. 준비하세요."

분위기를 띄우고 들어온 담당 PD의 말에 모두들 침을 삼킨다. 이 시간 이후 아무리 선후배 간이라도 양보는 없다. 이 순간에도 이매리씨의 중얼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오늘 방송사고 한 번 내겠습니다."

개그맨 박성호씨가 가장 먼저 무대 위에 올랐다. 첫 번째 도전곡은 박남정의 '아, 바람이여'. 반주가 나가자 출연자 모두가 백댄서를 자청한다. 승부는 시작됐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

2000년 10월 방송을 시작한 '도전!1000곡'엔 세 가지 법칙이 있다. '1절 가사 다 부르기(랩은 제외)''한사람만 마이크 잡기''전주 때는 가사 문의 가능'이다.

이 무대에 서는 출연자들의 부담감은 대단하다. 가수들이 더하다. 가사만 심사하기 때문에 가수라고 특별히 유리할 게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긴장했으면 자기 노래를 잊어버리는 일도 종종 일어날까. 전영록은 직접 작곡했던 '몰래 한 사랑'을, 김정수는 리메이크해서 자신의 앨범에 수록한 노래 '내일을 기다려'를 틀렸다.

강부자.문희옥.김연숙 등은 신세대 노래를 부르기 위해 노래지도까지 따로 받는 열성을 보였다. 샤크라의 황보, 자두, 신화, 베이비복스의 간미연, 강성훈, 이혁재 등은 출연을 앞두고 아예 노래책을 끼고 살았다.

감PD는 "기존 노래방 기계처럼 낮은 번호대는 흘러간 노래, 높은 번호대는 신곡 위주로 배열하지 않고 매주 신구곡을 고루 섞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니 섭외가 쉽지 않다. 신인의 경우 승패와 관계없이 얼굴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나온다. 그러나 '원로'들은 체면 때문에 설득이 쉽지 않다. 적어도 출연진 섭외를 2~3주전에 시작해야 한다. 제작진은 매주 중견들의 주활동 무대인 미사리를 돌며 1970~80년대 스타들과 접촉한다.

그리곤 집요한 설득이 이어진다. 박강성.정수라.이은하.박학기 등이 그렇게 해서 이 프로그램에 나왔다. 최근 우승을 차지한 가수 정훈희의 경우도 제작진이 3개월을 졸라 겨우 승락을 얻어냈다. 제작진의 요즘 '영입'목표는 가창력의 여왕 혜은이.인순이씨다.

오후 3시30분. "오늘의 우승자는 000!" MC 정재환과 이유진의 목소리가 들린다. 꽃다발을 든 승자는 웃고 있지만 함께 내려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한 출연자는 제작진에게 "다음에 꼭 명예회복을 하겠다"며 재출연을 당부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오늘 밤부터 치열한 노래 연습에 들어갈 것이다. 오는 16일, 치열했던 이날의 승부가 공개된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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