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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나량조의 문화|김창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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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나량문화(천평 문화)는 앞서 말한 대로 비조 문화의 연장이요, 발전이라고 한다. 상대에 가장 오래된 문화지대는 대화이며 동시에 정치의 중심지로서 원시 일본의 국가 체제를 길러낸 고향이라고들 한다. 이런데 나량의 서울 평성경은 대화 분지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1천 2백년 전에 원명천황이 이곳에 천도하여 710년이래 7대 70여년 동안에 불교를 중심으로 빛나는 「나량조 문화」를 낸 고도이다.
이 지역일대는 본시 4세기로부터 5세기에 걸쳐 응곤·인덕천황 때 백제 문화 사절 박사 왕인을 비롯하여 많은 한인들이 건너가서 탁월한 지식과 기능을 갖고 문화·정치·산업 등 발전에 절대적 기여를 해왔던 것이다. 조정은 국력을 신장키 위해서 호족들은 정치적·군사적 세력의 유지·확장을 위해 각각 그들의 포용에 주력한 것은 당연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한데 8세기 중엽에 접어들어 점차 국가 통제가 기틀이 잡혀가고 찬연한 비조 문화와 이어서 나량 문화도 어느 정도의 성숙 단계에 이르게 됨에 따라 외래인의 역할이 대폭 축소됐다. 효덕 천황은 천평보자 1년(757) 5월에 「양노령」을 시행, 귀화인에 대한 처치 규정을 명확히 하고 일본의 율령 국가 체재의 완성을 꾀했다.
하여간 나량 문화의 총 결정이며 한래인의 노력의 집결체인 동대사 비로사나 대불의 개안의식이 집행된 날이 752년 4월 9일.
743년 성무 천황에 의해 대불 조성이 밝혀진 이래 9년만의 완성이다. 그 동안 정계 내외에 많은 변화가 있었고 불상 조성 사업에 대한 반발도 컸었다. 또 이 불사에 공이 큰 대승정 현행기가 이미 입적했고 천백왕도 효겸천황에게 양위 됐다. 그럼에도 개안 의식은 문무 백관과 승려 등 1만 여인이 참렬, 전례없는 장엄 화려한 제회로 베풀어졌다<속 일본기> .
이 불상은 높이 5장 3척 5촌이나 되는 대불로서 웬만한 재력과 노력, 그리고 고도의 기술이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동대사 요록에 의하면 재목에 관한 지식 봉사자가 5만 1천 5백 90인, 금에 관한 자 37만 2천 75인, 역부 2백 17만 9천 7백 93인, 그 밖에 소요된 물자만도 열동 약 49톤, 백랍 8백 33kg, 연금 1만 4백 36량, 수은 5만 8천 6백량, 탄 1만 7백석을 사용했다. 주조물로서도 세계최대의 것이었다.
그런데 개안일에 문무백관이나 내의 승려보다도 대망하고 있던 인물의 하나인 국공마려라고 있었다. 그의 조부는 백제의 관리로서 덕율(제4위)이었던 국골부다.
그는 백제가 패망할 때에 건너갔는데 그 후손이 바로 국공마려다.
이 국공마려는 대불 조성의 현장에 있어서 가장 유력한 지도자였다. 천평 17년에 그는 정7위에 올라서 일약 외종 5위로 특진되었고 그의 불상 제작의 기량이 인증 되면서 이듬해에는 대화의 금명사 조불사가 되어 불상 제작의 대 장인으로서 활약했던 것이다.
대불전 비문의 필두에는「대불사 종사위하 국공마려」라 기록돼 있다.
당시의 개안의식에는 그 밖에도 한래인계 사람이 참석했는데 종4하에 재직중인 백제 왕족 충효, 종 5위 하의 진기촌수 마려가 좌경과 제국의 사원 송니의 명적·재회·외국사신을 맞아들이는 장관 자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공양회의 악무두로서 종5위 상 문기촌흑마려와 무인은 창전기촌 일족도 있다.
그들도 대화국 고시군 거주의 한직계(왕인 후예들)의 집단이었고 흑마려는 당시 재경의 관인으로서 활약하는 인물이었다(동대사 요록).
나량조 문화는 동대사 등 남도 7대 사찰을 비롯하여 일호사·반야사·법화사·해룡왕사· 추조사·관원사·당제사 등 대가람이 있고 더욱 불상에는 무수한 주조·조각·삭상 등 빼어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당대 예술품은 한토 백제 혹은 중국 육조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특히 동대사의 대불전 대불과 남대문리의 백견·이월당의 양병상·삼월당의 일광·월광상 또는 법륭사의 여러 건조물에 안치돼있는 관음보살상·석가삼존상·다문천·광목천상 등은 직접 한래인의 조성에 의한 것이다.
「동대불 조영의 사성」이라 함은 최초 발원한 성무천황, 승정역으로 화상 총관장을 한 양병·행기보살, 완성 후 도사역을 한 보제천나의 4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대불사의 주역은 대불사에 국공 마려, 대강사에 고시진국·고시대마려·포본남옥 등이었으며 여기에 종사한 장인들이 거의 한계 도래인이었던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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