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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에서 국산품 애용하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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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

“면세점을 토산품점으로 만들려는 것도 아니고…이게 말이 됩니까.”

 얼마 전 만난 면세점 업계 간부는 불만을 잔뜩 쏟아냈다. 사정은 이랬다. 지난달 초 면세점 판매품의 국산 비중을 높이는 내용을 담은 관세법 시행령이 발효됐다. 관세청은 후속 조치로 세부기준을 담은 고시를 준비 중이다. 면세품의 40%를 국산으로 채우란 내용이 들어갈 것 같다. 또 국산품 중 70%는 중소·중견기업제품이어야 한다. 대략 면세점 진열품 10개 중 세 개는 중소·중견기업 제품이 되는 셈이다. 면세점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현재 국산 비중은 30% 정도. 그중 40%가 중소기업제품이다. 이를 더 늘려 중소기업을 돕자는 취지다.

 하지만 그 간부는 면세점 쇼핑의 특성상 잘 모르는 중소기업 제품이 끼어들 여지가 적다고 했다. 대부분 어떤 제품을 살지 미리 정해놓고 온다는 거다. 명품 가방과 옷, 화장품, 술 등이 주요 대상이다. 특히 외국산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매출액 기준으로 80%에 이른다. 평소 비싸서 사기 힘들었던 수입 명품을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장점 덕이다. 외제 화장품 코너에서 남성들이 부인이나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제품을 살지 묻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국산품 매출은 20%에 못 미친다. 그것도 대기업 화장품과 홍삼, 담배 비중이 상당히 높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좋아하는 중저가 화장품도 나름 선전한다. 그러나 다른 중소기업 제품은 매출 상위권에서 찾아볼 수 없다. 내·외국인 모두에게 인지도가 낮은 탓이다. 또 국산품은 부가세만 면세되기 때문에 가격 인하 효과도 크지 않다. 지난해 인천공항에서 문을 연 중소기업전용 면세매장의 매출이 일반 면세점일 때보다 60%나 떨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걸 보면 중소기업제품을 무조건 늘리는 게 능사는 아닌 듯싶다.

 걱정스러운 움직임이 또 있다. 관세법 시행령은 면세점 수 기준으로 대기업 60%, 중소·중견기업은 20% 이상 비중을 유지토록 하고 있다. 대기업 비율이 80%를 넘는 현실에서 작은 기업이 참여할 공간을 넓혀 주자는 목적이다. 최근엔 야당 의원이 해당 비율을 50대 30으로 바꾸는 개정안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면세점은 초기 투자비용이 상당히 많이 든다. 여기에 관세청 고시까지 새로 적용되면 영업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면세점 안팎에서 중소기업이 감당하긴 쉽지 않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대기업들이 날리는 견제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래저래 중소기업들에 그저 꽃놀이패만은 아닌 것 같다.

 중소기업을 돕자는 취지엔 전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기 전에 중소기업들에 정말 도움이 될지 꼼꼼히 따져봤으면 한다. 별 도움도 못 주면서 자칫 해당 업계 전체의 경쟁력만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어서다. 취지가 좋다고 다 성공하는 건 아니다.

강갑생 JTBC 사회 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