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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죽나 한번 봅시다" 고성으로 끝난 여야 4자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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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오른쪽)와 민주당 김한길 대표가 2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여야 4자회담을 성과 없이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김한길 민주당 대표=“그렇게 자기들 주장만 하면서 예산안 얘기만 할 건가.”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예산안은 국민 모두를 위한 겁니다.”

 ▶김 대표=“(테이블을 ‘쾅쾅’ 치면서) 답답해, 답답해! (여당이 청와대를 상대로) 아무것도 못 하니까…. 나 김한길이 관둬도 좋다 이거야. 누가 죽나 한번 봅시다!”

 2일 오후 3시30분, 국회 본관 귀빈식당에선 이런 고성이 복도까지 흘러나왔다. 식당 안에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등 4명이 배석자 없이 앉아 있었다. 이날 오전 황 대표의 제안으로 긴급히 마련된 여야 4자회담 테이블이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냉랭했다. 김 대표의 목소리가 바깥으로 새어나오기 직전까지 황 대표는 이날로 11년째 법정시한을 넘긴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하루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계속 강조했다고 한다. 이에 김 대표가 버럭 짜증을 낸 것이다.

 김 대표는 당내 강경파들의 위임장을 받아들고 회담 테이블에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새누리당이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단독 처리한 이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김 대표는 당내 강경파와 협상파가 충돌하자 “내 직을 걸고 투쟁을 이끌겠다”면서 강경파의 손을 들어줬다. 김 대표가 ‘대표직 사퇴’ 카드까지 꺼내들자 당내 강경파도 향후 대여 투쟁 방법이나 협상 문제는 김 대표에게 일임한 상태였다.

김 대표의 ‘누가 죽나 봅시다’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4자회담장 밖으론 계속 큰 소리가 흘러나왔다.

 ▶황 대표=“아니, 그러니까 논의, 합의를 하자는 것 아닙니까. 예산에 대해서!”

 ▶전병헌 원내대표=“아니 그러니까… (예산 말고도) 여러 문제를….”

  이어 약 10여 분간 “그러니까 국회가 정상화돼야…” “어느 한 쪽이…” “누가 죽는지 끝까지 가보자” 등의 말들이 들려왔다. 회담장 밖에 취재기자들이 몰려 있다는 보고가 안으로 들어간 뒤에서야 고성은 가라앉았다.

 양당 대표와 원내대표들이 접점을 찾지 못했던 부분은 역시 민주당이 요구하는 국가기관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특별검사 문제였다. 특검 도입을 둘러싼 양당의 지루한 공방은 이제 서로 정면을 바라보고 돌진하다가 어느 한 쪽이 피하지 않으면 모두 망하는 ‘치킨게임’(겁쟁이 게임) 양상으로 흐르고 있다. 치킨은 미국 속어로 ‘겁쟁이’를 뜻한다. 아직까진 ‘치킨’이 새누리당이 될지, 민주당이 될지 가늠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 김관영 대변인은 회동 후 “특검과 국정원 개혁특위 쪽으로 논의가 집중된 것은 사실”이라며 “특위는 어느 정도 공감이 있는 부분이고 예산안이나 법안 심의도 특검 문제가 해결되면 자동 해결될 문제”라고 말했다. 거꾸로 특검이 안 되면 예산안이나 법안도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특검 도입 절대 불가’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 결국 회담은 고성이 오간 지 20여 분 만인 오후 3시50분쯤 끝났다. 결과는 ‘협상 결렬’이었다. 협상의 유일한 성과라면 3일 다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양당 대표와 원내대표는 3일 오전 10시부터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

 회의 후 황 대표는 웃으며 “유익했다. 충분히 솔직하게 다 얘기하는 게 중요하다. 내일은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는 “대변인들이 얘기할 것”이란 말만 반복했다. 반면에 김 대표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김 대표는 “갈 길이 멀지만 내일 다시 얘기해 보겠다”고 짧게 말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의 여당 단독처리를 거론하며 “예의와 금도를 벗어난 것”이라고 했다.

 이날 회동은 황 대표가 오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제안하고, 민주당이 응해 성사됐다. 새누리당은 4자회동을 위해 단독으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상정하려던 계획을 보류했다. 그러나 3일 회동이 결렬로 끝나고, 추가 회동 일정을 잡지 못하면 단독 상정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3일 회동 전망에 대해선 예상이 엇갈린다. 이날 분위기로 봐선 결과물을 내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지만, 양측이 재회담을 열기로 한 것을 보면 양당 강경파를 설득할 절충안이 교환됐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강태화·이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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