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제주 발전시키라고 특별법 만들었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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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동주 제주도 서귀포시장이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열린 서귀포고 동창회에서 “우근민 제주지사가 내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면 서귀포시장을 계속 시켜주겠다고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 학교 2회 졸업생인 그는 이날 동문 1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서귀포고가 모든 인사에서 밀려 있다”며 “내가 더 해야 이 친구들을 다 제자리로 끌어올릴 수 있고 서귀포 시내에서 사업하는 분들 계약 하나 더 줄 수 있다”며 도움을 청했다. 이에 제주도는 다음 날 그를 전격 해임하고 자체 감찰조사를 진행해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 것으로 드러나면 사법기관에 수사 의뢰할 것이라고 밝혔다. 제주선거관리위원회도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제주·서귀포 시장은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에 의해 선거로 뽑지 않고 도지사가 임명하므로 도가 해임할 수 있다.

 우 지사와 한 전 시장은 이 발언에 대해 말실수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내부 결탁과 뒷거래와 관련된 이야기를 공공연히 떠들고도 말실수라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다. 만일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공직선거법에서 규정한 ‘공무원 중립의무’를 어기거나 투표에서 지지를 이끌기 위해 자리를 주겠다고 약속하는 ‘매수 및 이해유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선관위는 한 전 시장을 이른 시일 안에 소환해 선거법 위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마땅하다. 검찰도 한 시장이 이와 관련해 선거법을 위반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위법행위를 저질렀는지를 수사해야 한다. 감사원도 나서서 제주의 고위 공직자들이 동문 공무원들의 인사를 챙겨주거나 지역 동문들에게 이권을 나눠주는 등 자치권한을 부당하게 남용하며 토착 세력과 결탁했는지 여부를 낱낱이 살펴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특별법은 제주를 아시아 최고의 자치도시로 발전시킬 목적으로 산하 시장을 도지사가 임명하게 했다. 하지만 행여 이런 권한을 제주 발전이 아닌 사익을 위해 남용한 사실이 밝혀지면 당사자가 이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국회가 나서서 재발을 막을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할 필요성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