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풀 날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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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 며칠 사이에 우리 마을에는 새로운 아침인사가 등장했다.
『물 나와요?』『물 많이 있어요?』다. 얼마나 주부들이 식수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더위에 시달리는 데다 물까지 귀하고 보니 더 덥고 각박할 수밖에 없다.
물지게를 진 어느 임신부가 온통 땀 투성이가 되어 비틀거리며 산등성이를 오르는 뒷모습에서 밤늦게라도 앉아서 물을 받을 수 있다는데 다행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시각에 수도 물이 우리 집에까지 차례가 와 줄지 깜박하는 사이에 물을 못 받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깊은 잠을 잊은 지도 꽤 오래다.
어린아이의 오줌줄기만도 못한 아랫집의 물줄기를 부러운 시선으로 넘겨다보며 우리 집 수도꼭지를 지켜보노라면 똑똑 몇 방울 떨어지다 매정스럽게 끊어져 버릴 때의 안타까움.
체념을 하고 자리에 가 누워도 쏟아지는 수도 물의 환상은 좀처럼 지워지지가 않는다.
부탁하고 싶다. 물을 좀 나누어 먹자고. 낮은 지역에서 쓰고 남는 물을 높은 지역에서 받아먹는다는 식이 아니고 우리 집에 오는 물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마음가짐으로 서로가 아껴 쓴다면 다만 몇 집이라도 더 높이 물줄기가 올라가 주지 않을까?
대홍수만이 물난리는 아니다. 먹을 물을 얻지 못해 식구가, 아니 온 마을 사람이 총동원해서 물 초롱을 들고나서는 것도 물난리임엔 틀림이 없다. 언제일까? 갈증으로 겪는 고지대에 사는 아픔이 가실 날은.<길희경(서울 서대문구 홍은 2동 14의 27 전수동씨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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