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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존엄사법은 환자 인권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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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
법학박사

기침이 멈추질 않았다. 혹시 폐암이 아닐까 해 조직검사를 받던 중 혈관이 터지면서 어머니는 심장이 멎고 뇌사에 빠졌다. 온몸이 퉁퉁 부어올라 사람인지조차 모를 지경이 되어갔다.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해 호흡기 제거를 부탁했다. 어머니는 깨끗하게 눈을 감겠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치료중단은 살인죄가 된다면서 거절했고 할 수 없이 호흡기 제거 소송을 하게 되었다. 세브란스병원 존엄사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죽을 권리를 달라는 소송으로 잘못 이해한 일부 시민이 부모를 죽이는 불효자라며 비난해 가족의 마음고생이 심했다. 인공호흡기를 빼고 치료받기를 원한 환자의 뜻대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 스님이 그렇게 치료받았다. 전직 대통령처럼 적극적인 치료를 받을 권리도 당연히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 환자에게 연명치료 방법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임종기 환자가 인공호흡기 등을 다는 게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고 하니, 생명을 유지하는 데 무의미한 치료는 없다는 종교적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인생 말기에 죽음이 삶보다 나은 분기점이 어디엔가 분명히 있다. 다행히 대법원은 생명권은 기본권이지만 예외적으로 죽어가는 과정에 들어선 다음에는 인공연명장치 없이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며 환자의 손을 들어 주었다.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떼고 중환자실에서 나와 일반병실에서 가족과 200여 일을 함께 지내다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부모·자식 간에 말기치료 방법을 꺼낼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유교 전통으로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큰 불효였으나 이제 자연스레 물어볼 수 있게 됐다. 사전의료의향서를 공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국회에서 관련 입법이 발의되었고 보건복지부도 시민사회단체·환우회·종교계·의료계·법조계로 사회적 합의체를 구성해 논의 끝에 존엄사 법안을 마련했다.

 법안은 병원윤리위원회 제도화, 사전의향서 활성화, 환자 의사를 모를 경우 가족에 의한 대리결정권 인정을 담고 있다. 사전에 연명치료 포기를 미리 정해 놓는 환자는 거의 없다. 의사 입장에서는 ‘모를 경우 생명 유지의 이익으로’ 해석해 연명치료를 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 가족합의로 치료중단이 가능하게 됐다. 종교계나 환자단체는 법안이 ‘현대판 고려장‘으로 악용될 것을 우려하며 병원윤리위원회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현실적이지 않다. 윤리위를 구성할 능력이 있는 의료기관은 10%가 되지 않는다. 구성된 곳도 위원회를 소집하는 데 며칠 걸려 실효성이 없다. 절차를 너무 까다롭게 하면 환자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않고 그냥 집에 두게 돼 더 큰 인권침해를 부추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가 없도록 무상에 가까운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치료비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중단 결정에 순수성을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치료 받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임종을 맞이하게 하는 데 사회적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정부는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 등 소위 ‘3대 비급여’를 없애 재난적 진료비 폭탄으로부터 환자를 해방시키고, 국민은 무의미한 집착적 의료행위를 자제하고, 호스피스 기관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존엄사법은 말기환자의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하는 인권법이다. 죽음은 삶의 일부다. 삶의 마지막 완성 단계를 아름답게 맞이할 수 있도록 조속한 입법을 기대한다. 법률 초안이 나왔으니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국회가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