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장의 폐지 방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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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나라의 장은 그 역사가 매우 길고, 또 아직까지 고유한 성격과 기능을 지니고 있다.
지역 사회 특히 농촌 지대 주민들의 일상 생활과 밀착되어 유통면의 큰 몫을 맡아 왔을 뿐 아니라, 광의의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서 거의 제도적인 기능을 발휘해 왔다. 그러므로 장의 폐지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경제적 측면 못지 않게 사회적 영향도 아울러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부 당국은 장 가운데 그중 보편화되어 있는 5일 장을 전면적으로 폐지할 방침이라고 한다. 그 이유로서는 농촌의 소비 지출을 증가시키고 노동력·시간의 손실 등 비생산적 요소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확실히 우리 나라의 장은 전근대적인 폐쇄 사회의 유물과 같은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습관화한 물물교환적인 유통 방식이 뿌리 깊게 남아 있음으로써 근대적인 유통 구조의 형성과 시장 경제의 발달을 뒤지게 하고 있는 점이 없지 않다.
더구나 전국적으로 교통망이 점차 확충되고 「커뮤니케이션」의 각종 매체가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근대화의 과정에서 장이 가진 본래의 경제적 기능은 갈수록 쇠퇴되고 하나의 풍습으로 변모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따라서 장을 폐지하거나, 그 빈도를 줄이려고 하는 정부 방침 자체에는 구태여 이의를 제기할 까닭이 없다고 본다. 다만 이 문제를 결코 안역하게 생각하지 말고 경제·사회적인 효과를 고려에 넣는 대책을 아울러 강구해야 되겠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장이 지닌 「마이너스」 요인만을 좁게 해석하여 무작정 불필요한 존재로서 부정하는 소극적인 자세에서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유통 경제를 근본적으로 개선 발전시킨다는 적극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에 대처해야 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일상 용품이나 공산품의 공급 조건은 도시보다 농촌이 훨씬 처지고 있어 저질·고가의 현상이 일반화하고 있다. 농협의 공직 사업 같은 것도 부분적으로는 성공하고 있으나 이러한 공공 판매 제도로 하여금 전체적인 하부 구조를 맡게 할 수는 없고 또 불가능하다.
우리 나라 시장 경제의 당면 과제는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복잡하며, 중간 「마진」이 너무 많다는데 있다.
그런데 장의 기능 중에는 물품의 집산이 쉽게 이루어지고, 공산품을 제의한 소비 물자에 있어서는 생산자간의 직접 교환으로, 중간 이윤을 배제할 수 있는 무시 못할 장점이 있다.
장과 대체될 상설 시장의 설치 등 대체적인 대책을 마련함에 있어서 농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가기보다는 상인들의 이윤만 불리게 하는 부작용을 빚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장의 폐지에 따라 종지에 생계의 터전을 잃게될 장꾼들에 대해서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옛날 보부상의 전통이 장꾼들의 「이미지」 속에 살아 있는 것이며 그들의 존재는 실상 행상의 구실 이상으로 농촌 주민들 속에 융합되어 있는 것이다.
급격한 도시화·근대화의 세찬 물결 속에서 우리 고유의 정취 어린 민속과 관습이 하나하나 사라져 감은 서운한 일이다. 그러나 엄연한 현실 앞에 감상적인 보수주의도 금물일 것이다. 정부 당국은 경제·사회적인 넓은 안목에서 합리적인 농촌의 시장 기반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장의 폐지 문제를 신중히 다루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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