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단독처리 이후 국회가 해야 할 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국회가 다시 멈춰 섰다. 국민이 맡긴 내년도 예산안 심사와 법안 처리는 제쳐두고 극단적인 대결을 벌이고 있다. 정치 원로와 다선 의원들이 수없이 많아도 정치력을 발휘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 국민들은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참고 보아야 하는지 답답하다.

 새누리당은 그제 ‘황찬현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을 단독처리했다. 그러자 어제 민주당 지도부는 의원총회까지 열어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중단했다. 2014년도 예산안 심의를 위해 예결위원회에 불려 나온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관계 장관 등 53명은 하루 종일 회의장에서 있다 허탈하게 발길을 돌렸다. 국회가 법정시한을 넘겨 예산안을 처리한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예산안 심의를 시작조차 못하는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것은 무능한 지도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지금까지 고비고비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극단적인 강경책만 선택했다. 당 장악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소속 의원들을 설득할 논리도 카리스마도 없어 강경파의 눈치만 보고 끌려다니기 일쑤다. 법대로 하자는 새누리당이나 강경투쟁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민주당 모두 이해할 점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국회는 규칙대로만 움직이면 되는 초등학생들의 게임이 아니다. 어려운 국면에서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풀어갈 수 있다. 과거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국면에서도 지혜를 발휘했던 선배 정치인들을 돌아보아야 한다. 소수파를 달래 포용할 줄 아는 여유, 요구사항을 분명히 정리해 협상할 수 있는 조건과 분위기를 만들 줄 아는 지혜가 절실하다.

 사실 민주당이 이번에 불씨가 된 황찬현 감사원장 인준안을 문형표 복지부 장관 임명 문제와 연계한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예산안 심사와 법안 처리를 산더미 같이 쌓아놓은 정기국회에서 굳이 며칠 앞당겨 임명하겠다고 단독처리를 강행한 새누리당도 이해하기 힘들다. 국회가 파행하면 가장 큰 책임은 집권당이 질 수밖에 없다. 집권당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아량과 소수당에 대한 존중, 인내와 설득 노력 모두 부족했다.

 사실 국회가 결빙된 근본 원인은 국정원 댓글과 관련한 특별검사 도입 문제다. 새누리당 최경환 원내대표와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이 문제를 성역시해 당내 토론조차 막고 있다. 얼마 전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와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이 문제를 논의할 4인 회의체 구성안을 내놨을 때도 이들이 무 자르듯 잘라버렸다.

 이렇게 계속 강(强) 대 강으로 가서는 곤란하다. 먼저 집권당이 자세를 바꿔야 한다. 단기 승부가 아니라 나라의 장래를 걱정해야 한다. 특히 집권당의 원내 지도부는 청와대 비서진과 달리 때때로 대통령과 마주 앉아 그를 설득하는 용기를 보여야 한다. 그게 집권당과 국회의 위상을 높이고 야당한테도 숨 쉴 여지를 줄 수 있는 방법이다.

 민주당도 순간순간 강경파에만 휘둘려서는 곤란하다. 요구사항을 단순화하고, 지도부에 재량권을 줘 협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경하게만 나가는 건 단기 승부에 이기고, 속이야 후련할지 몰라도 책임 있는 정당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초선인 최민희 의원이 “일 있을 때마다 의사일정을 거부하면 국민이 어떻게 보겠느냐”고 한 말에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정치는 국민을 보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