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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톨스토이부터 모옌까지 … 문학에 길을 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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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감정수업
강신주 지음
민음사, 526쪽
1만9500원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12월 주제는 ‘마음과 마음 사이’입니다. 2013년 한 해를 마감하며 내 마음,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신간 세 권을 골랐습니다. 문제는 결국 우리 자신입니다. 더 새롭고 풍성한 2014년을 준비하는 양식이 됐으면 합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라 하지만 기분대로 사는, 또는 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관습에, 윤리에, 이성에 밀려 감정을 감추고, 바꾸고, 죽이고 산다. 그런데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자고 한다. ‘거리의 철학자’로도 불리는 지은이의 제안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 그것은 감정을 억누르거나 죽이는 기술을 얻었다는 것 아닐까요”라며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감정의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분출이 가능하냐의 여부에 달린 것”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지은이는 ‘감정의 복권’을 위해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의 인식 틀을 빌렸다. 비루함·연민·분노 등 스피노자의 『에티카(Ethica)』에서 제시된 48가지 감정에 걸맞은 문학작품을 읽어가며 마음의 결을 살피는 방식이다.

 그러니 이 책은 우선 철학자가 읽어주는 문학이다. 그런데 보석 같다. 처음 집필 아이디어를 냈던 편집자가 주로 추천했다는 작품들은 다채롭고 풍성하다. 찰스 디킨스나 톨스토이 같은 문학전집 속의 명작부터 200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문제작 『피아노 치는 여자』까지 조망한다. 시대만 가로지르는 것이 아니라 중국 작가 모옌, 멕시코의 카를로스 푸엔테스 등 다양한 문학세계가 곁들여졌다.

 여기에 독특한 시선이 빛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자본주의에 대한 ‘실패한 분노’로 읽는 것이 그렇다.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자본주의의 냉혹함에 한없이 무기력하면서도 그 본질을 냉정하게 보지 못하고 전당포 노파에게 쏟아냈다는 이유에서다. 전당포 노파를 죽여도 누군가가 다시 전당포를 차리고, 다른 누군가는 아쉬움에 그곳을 찾을 거란 사실을 든 다음이다.

 “분노는 타인에게 해악을 끼친 어떤 사람에 대한 미움”이란, 자못 추상적인 스피노자의 정의를 이렇게 풀어주면서 개인 차원의 화를 사회적 분노, 공분(公憤)으로까지 연장한다. “분노는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감정이 아니다. 최소한의 연대 의식 혹은 유대감이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잊지 말자. 우리라는 의식이 없다면, 해악을 끼치는 강자에 대한 분노도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이란다.

 문학에서 길어낸 인생론으로 읽기도 하다. “복수심은 미움의 정서로 우리에게 해악을 가한 사람에게 똑같은 미움으로 해악을 가하게끔 우리를 자극하는 욕망이다”라는 아리송한 스피노자의 명제를 풀어주는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을 다룬 ‘복수심’편 말미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노예 도덕을 상징하는 것’이란 구절이 실렸다.

 강자에게 핍박을 받은 약자가, 복수를 시행할 힘조차 없을 때 이 속삭임은 마치 자신이 복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양 스스로를 기만해 복수조차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자괴감을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잊지 말자. 사랑이든 복수든 그것은 오지 자유로운 자, 혹은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욕망이라는 사실을. 약자는 원수를 용서할 자격조차 없다”고 갈파한다.

 책 제목은 ‘수업’이지만, 그리고 각 장 끝에는 ‘철학자의 어드바이스’가 붙어있지만 정색하거나 무게 잡는 인생교재로 볼 것은 아니다. 문학 감상을 위해서나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기 위한 색다른 가이드로 읽어도 무방하다. 어차피 ‘학점’도 ‘정답’도 없는 인생이니 말이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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