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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은 자신을 갈아 1000년 흔적을 남깁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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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배운 게 먹뿐이라 아들 딸에게도 먹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는 유병조 먹장. [사진 경주시]

“먹은 1000년을 갑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만 보면 알 수 있어요. 경판에 먹이 묻어 있어 좀이 쓸지 않아 지금껏 보존된 겁니다.”

 경북 경주에서 문방사우 중 먹을 만드는 장인인 유병조(73)씨는 “먹은 자신을 갈아 1000년 흔적을 남긴다”고 말했다. 먹으로 쓴 글을 태우면 종이는 없어지지만 먹은 재 속에서도 희미하게 남는 경이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유씨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35호 먹장(묵장·墨匠). 국내에서 유일한 먹 분야 장인이다. 다음 달 1일까지 경주시 노서동 청와갤러리에서 공개발표회를 하는 그는 이 자리에 자신이 만든 10여 종류의 전통 먹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작은 송연먹(松煙墨). 고서화에서 발견된 먹으로, 먹 가운데 으뜸으로 전해진다. 약간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유 먹장은 오랜 노력 끝에 이 먹을 복원했다. 무쇠로 된 화로에 소나무 옹이인 관솔을 태우면 비중이 무거운 그을음이 연통에 남는다. 그 그을음을 모아 아교와 향이 있는 한약재를 섞고 먹틀에 찍어 그늘에 40일 정도를 말리면 먹이 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송연먹이다. 그는 “그을음을 받는 기계를 만들지 못해 아직 시판할 정도는 안 된다”고 아쉬워 했다. 이 먹은 2005년 팔만대장경을 탁본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

 주먹 먹이란 것도 있다. 먹을 주먹으로 쥐어 만들어 유 먹장의 지문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먹이다. 이 먹은 벼루 아닌 유리나 쟁반에서도 잘 갈리는 게 특징이다. 산수화 작가들이 야외에서 돌로 된 무거운 벼루 대신 유리에 먹을 간 뒤 묵화를 치도록 만든 먹이다. 전시장에는 자신이 초창기에 만든 먹과 먹을 연구하면서 실패한 먹도 같이 내 놓았다. 그가 만든 먹은 먹물이 맑고 먹을 갈 때 엉기지 않으며 붓에 잘 내리는 특징이 있다.

 그에게 먹을 가르친 사람은 작은아버지 재근씨다.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유 먹장은 광복 뒤 귀국해 국민학교만 겨우 졸업하고 먹을 게 너무 없었다고 한다. 겨울은 나기가 더 힘들었다. 그래서 겨울에만 일이 있는 작은아버지를 찾아가 먹 만드는 걸 도운 게 14살 때였다. 먹 재료인 아교는 여름이면 변질되고 냄새가 나 겨울에만 먹을 만든다. 그때부터 60년째 먹은 그의 일이 됐다. 작은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 기술과 먹 제조 도구를 모두 조카에게 넘겼다. 1983년 유 먹장은 경주 건천에서 ‘신라조묵사’란 상호로 먹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97년 노동부의 ‘먹 만들기 기능전수자’로 선정됐고 2009년에는 경북도 무형문화재가 됐다. 유 먹장은 “1960년대만 해도 먹으로 먹고살 만했는데 이제는 찾는 이가 확 줄었다”고 말했다. 그래도 배운 게 먹뿐이어서 아들 성우(43)와 딸 정화(42)에게 요즘 먹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3대째다.

 『일본서기』에는 고구려 승려 담징이 일본에 먹 제조법을 가르쳤다는 기록이 나온다. 일본 쇼쇼인(正倉院)에는 신라 먹이 소장돼 있다. 우리 전통 먹이 일본보다 역사가 앞선다는 증거들이다. 유 먹장은 “하지만 지금 우리 전통 먹은 위태롭게 명맥을 이어가는 형편”이라고 걱정했다.

경주=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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