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결정에 밤잠 설치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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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남북공동성명이 나오기까지의 뒷 얘기는 아직도 대부분 「베일」에 가려있다.
박대통령은 이후락 정보부장의 평양행을 결정하면서 심각한 검토를 해, 때론 밤잠을 설치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고 한밤중 중앙정보부에 나와 북한관계 「브리핑」을 듣기도 했다는 얘기다.
이런 고심 끝의 박대통령 결단에 따라 이부장이 평양에 가겠다는 의사를 북에 통고한 것이 지난3월.
5월2일 평양행이 실현되기까지는 남북적십자 예비회담장소에 설치된 전화로도 교섭이 진행됐고 평양행직전에 이부장사무실과 북의 김영주사무실을 연결하는 전화가 가설됐다는 것.
이부장은 판문점을 거쳐 개성까지만 자동차로 가고 개성서 평양까지는「헬리콥터」를 이용한 반면 박성철은 판문점∼통일로를 거쳐 육로로 서울에 들어왔다.
5월28일 하오 5시 판문점 자유의 다리를 넘어선 8대의 「세단」 이 있었지만 그안에 박성철 일행이 있다고는 판문점의 한미경비병들조차도 몰랐던 일.
박성철은 영빈관에 묵었고 T「호텔」에서 화식을 들기도 했다고.
이부장이 중대발표를 하고있던 4일 상오10시 평양에서는 방송을 통한 남북공동성명이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울의 발표가 내외기자 1백여명을 상대한 회견형식임을 알았음인지 낮12시에야 박성철이 기자회견을 했다고.
남북공동성명 「쇼크」로 국회운영이 풀렸다.5일의 총무회담은 남북회담에 대한 김종필 총리의 보고를 듣고 납득이 될 때까지 질문을 한다는 합의를 3분만에 성립시켰다.
신민당에선 김대중·김영삼·이철승·박병배·이세규의원 등 30여명이 질문을 신청해 총무단은 순서와 숫자를 조정하느라 애를 먹었다.
김총리의 보고는 이부장의 발표와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북한은 어젯밤에도 심심할 때까지 대남방송을 통해 입에 담지 못할 육설을 했다』면서 『비약적 생각이나 상상을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남북공동성명의 충격속에 신민당은 4일하오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3시간 반 동안 토론을 벌였으나 당론결정은 보류했다.
흥분된 분위기속에서 12명의 의원들이 발언에 나섰는데 상오에 내놓은 김수한대변인의 부정적인 성명과는 달리 모두 『국제정세의 흐름으로 보아 필연적』이라는 긍정론이었다.
성명내용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것은 『공동성명3항에서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라는 부분은 문젯점이다』고 한 박병배정책심의회 의장의 발언정도.
특히 『지난해 선거 때 내가 주장했던 것이다』(김대중), 『나는 오대국회서 이런 것이 모색돼야한다고 주장한 일이 있다』(김영삼), 『국제정세의 흐름으로 보아 예상됐던 일이다』(이철승) 라고 한사람도 있고.
문공부는 4일 발표된 남북공동성명에 대한 홍보용 소책자 『남북공동성명은 무엇을 뜻하나』 『각계반응』 을 발간했다.
담당직원들이 밤을 세워 만들어진 이 책자에는 공동성명서의 내용, 배경, 필요성 등이 열거되었고 특히 「북괴」라는 용어가 모두 「북한」 이라는 말로 바뀐 것이 특색.
지난달 5·16때 박대통령의 기념사에는 이미 「북괴」라는 말 대신 「북한공산주의자들」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는데 그때는 이후락부장이 평양을 다녀온 뒤고, 박성철이 서울에 오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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