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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네 명 아이들과 연주 … 훌쩍 큰 건 바로 나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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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다큐멘터리 영화‘안녕?! 오케스트라’의 리처드 용재 오닐. 그는 “아이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봐주시길 부탁 드린다. 영화를 보고 나면 내가 그랬듯, 당신의 삶도 얼마든지 적극적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 영화사 진진]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35)은 유려한 연주, 훈훈한 외모로 전세계 팬을 거느린 스타다.

 지적 장애가 있는 한국인 어머니를 둔 그는 어머니를 입양한 미국의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의 장애, 아버지의 부재, 이웃의 차별적 시선 등을 딛고 그만의 꽃을 피워냈다.

 그가 지난해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위한 음악 멘토로 나섰다. 다큐멘터리 ‘안녕?! 오케스트라’(감독 이철하·28일 개봉)에는 그 1년간의 활동이 담겨 있다. MBC 4부작 다큐를 극장판으로 재편집했다. TV다큐는 최근 국제에미상 아트프로그램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를 e-메일로 만났다.

 - 스물네 명의 아이들과 처음 만난 순간, 기분이 어땠나.

 “처음 제안을 받고 바로 하겠다고 했다. 의미가 있는 일이기에. 그런데 막상 어떻게 첫 인사를 해야 할지는 막막했다. 하지만 첫 만남만 어려웠을 뿐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필요한 부분은 통역이 도와줬다. 내가 한국말을 잘 못하니까 아이들이 오히려 편한 친구처럼 생각해준 것 같다.”

한국말 잘 못해도 아이들과 통해

 - 아이들과 갈등하는 장면이 없다.

 “서로 믿음을 키우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아이들이 나를 믿고 있다는 걸, 나 역시 아이들을 완전히 다르게 대한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내가 나 자신을 정말 ‘아이’라고 느낀 것 같다. 우리 관계가 모범사례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다.”

 - 저마다 상처를 지닌 아이들이다. 가장 크게 성장한 아이가 있다면.

 “아마도 나일 것이다. 촬영 막바지에 개인적으로 퍽 힘들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내가 찾고 있던 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누군가와 다시 연결될 기회가 사라져버렸다.”

 - 가장 감동받은 순간이라면.

 “아이들과 처음 무대에 섰을 때다. 작은 연주회를 열었다. 나도 지휘자로 데뷔한 날이었다. 요즘은 아이들 실력이 많이 늘어서 어려운 곡도 곧잘 한다. 지난달에 놀러 갔더니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연습하고 있었다! 무척 뿌듯했다.”

음악의 위대함 다시 느껴

 - 지금도 계속 만나고 있나.

 “올 부산영화제에 함께 초청을 받기도 했다. 평소 아이들이 내 공연을 보러 오기도 하고.”

 - 당신의 삶도 바뀌었을 텐데.

 “정말 그렇다.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음악가의 삶만 보고 달려왔다. 이 아이들을 만나면서부터 나눔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 음악의 힘도 제대로 느꼈고.”

 -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다.

 “내가 성공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일을 정말 사랑한다. 연주를 한다는 것, 날마다 축복을 받는 느낌이다. 특히 이번처럼 어린 세대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영광이다. 자부심을 준다. 정말 좋은 삶이다.”

 - 새해 목표가 있다면.

 “지금까지는 정말 워커홀릭으로 살아왔다. 여러모로 여유를 갖고 생활의 균형을 찾는 데 중점을 두려 한다.”

임주리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정지욱 영화평론가) 음악으로 상처를 나누고 보듬는 과정이 매끄럽다. 그 상처가 아물어 가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이은선 기자) 음악이 부모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 그래도 노력과 성취라는 값진 희망을 발견하게 하는 착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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