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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Y부대>(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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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유격전>(8)
1951년 9월 19일 56명의 대원으로 별도 편성된 Y부대의 해상대는 소정의 훈련을 끝내고 52년 초부터 본격적인 작전을 전개했다.
해상대는 단기작전으로 해안선 일대와 적 보급로 파괴, 부락의 악질공산당원 납치 등과 같은 후방교란「게릴라」전을 벌였다.
적은 「물쥐」들의 유격전이 치열해지자 월동중인 육상부대 「게릴라」토벌에 집중했던 병력의 일부를 해안지방으로 빼돌렸다.
물론. 이 같은 일석이조의 작전효과를 겨냥했던 해상대는 월동중 대부분 참패한 육상부대의 한을 풀기 위해 52년 말까지 결사적인 「게릴라」전을 벌였다.
칠흑 같은 밤에 영하40도의 바닷물 속을 1㎞씩 수영해 들어가는 수영척후병과 고무「보트」로 상륙한 대원들은 날이 밝기 전까지 모든 작전임무를 수행해야했다.
해상대의 작전에는 항상 전대원이 출동했다.

<20차 작전서 적군중위도 생포>
해상대 유격용사들은 20여차에 걸친 작전에서 큰 피해 없이 적 보급 차량을 폭파하고 괴뢰군 중위를 생포해오는 등 큰 전과를 올렸다.
이제부터 당시 해상대에서 활약했던 유격용사들의 얘기를 들어보겠다.
▲황보현씨(당시Y부대 해상대원·현 사업·45)<수영에 능하고 배를 잘 탈 수 있는 대원들을 선발해 편성한 우리 해상대는 함남안변 출신인 오박 동지가 초대 대장이 됐어요.
우리는 영도 앞 바다에서 완전 무장하고 수영하는 법·폭파법·유격술등의 훈련을 3개월 동안 받았어요.
출동 전 1주일동안은 상륙할 지점의 지형과 비슷한 곳을 영도 내에서 골라 가상적지를 만들고 실전을 방불하는 야간훈련을 했습니다.
해상대의 전신인「보트」「그룹」때나 편성초기에는 해상 침투하는 육상대원들을 수송해줬어요.
51년 11월부터 해상대는 ①적 해안의 교량·철교·도로파괴 ②후방보급차량 파괴 ③침투한 육상대원들의 유사시 구출 ④공산당 주요기관 습격 ⑤공산당요원 납치 등의 작전임무를 띠고 출동하기 시작했어요.
상륙방법은 우선 미군 공작함을 타고 해안 4㎞까지 접근한 후 「모터·보트」인 예인선으로 갈아탑니다. 상륙 지점 1㎞에서부터 고무「보트」로 옮겨 타고 「패들」을 저어가다 5백m앞에서 경박하고 2명의 수영척후가 먼저 헤엄을쳐 들어가 적정을 살핍니다.
수영척후의 안전신호가 오면 수색·경계·폭파조가 일제히 「패들」을 다시 저어 들어갔어요.
작전지역은 원산부터 청진까지였는데 청진지방에 침투할 때는 소련군「레이다」에 걸리는 수가 있어 아주 조심스러웠어요.
우리가 출동할 때는 늘 미 해군 구축함과 순양함들이 엄호해줬고 함포사격을 해줬어요.
우리는 야음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한달 중 15일동안만 작전을 했어요.>
▲한수신씨(당시Y부대해상대원·현 건축업·48)<52년 1월 5일 함북 학성군 학남면 일신동의 「터널」을 파괴하러 들어갔습니다.
대원들은 모두 눈빛과 같게 흰「가운」을 입어 위장하고 무사히 상륙해 「터널」위 고지에 본부를 설치했어요.
3소대는 폭약을 철로가에 운반해왔어요. 「터널」입구를 경비 중이던 2소대서 16세의 적보초병 이규찬 소년을 잡아왔더군요.
나는 1소대를 지휘해 수색을 마치고 「보트」경비를 하러나가다 참호 속의 적과 조우해 총격전을 벌였어요.
폭약을 매설 중이던 폭파 조에서도 작업을 중단코 지원사격을 해 우리 소대는 아군총탄을 피하느라고 혼났어요.
대원2명이 측면으로 우회해 적 참호 속에 수류탄을 까 넣었어요.

<적 참호 속에 수류탄 던져 넣고>
참호 속은 피와 흙으로 뒤범벅이 되면서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돼버립디다.
8명의 괴뢰군이 산산조각이 났고 2명은 튀어나와 도망을 쳤어요.
황보현 소대장이 지휘하는 폭파 조는 함경본선의 일신동철교에 이를 매설한 후 13분의 「타이머」를 걸고 나왔어요.
공작함 갑판 위서 망원경으로 쳐다보니 폭파된 철교 밑에는 기관차한대가 거꾸로 박혀있습디다.>
▲박기주씨(당시Y부대해상대원·현 강원도 속초시서 대서업·44)<52년 2월 26일 철교를 폭파하고 부락악질공산당원들을 납치해올 목적으로 해상대 전투요원 45명 전원이 함남여해진에 침투했습니다. 폭파소대가 작업을 시작하자 함경본선 북쪽에서 기차가 내려옵디다.
오박 대장은 전대원을 철수시켜 재배치한 후 기차를 기습 공격해 파괴토록 명령합디다. 기차는 철교 앞에서 정지하더군요.
괴뢰군 한명이 내려 정을 치며 걸어나가니까 그 뒤에야 기차는 서서히 철교를 건너옵디다.
솔밭에 매복했던 우리대원들은 무반동포를 선두로 일제사격을 퍼부었어요. 기차는 화차2량이 파괴돼 떨어진 채 그대로 달려「터널」속으로 들어갔어요.
다음에 우리는 부락으로 들어가 세포위원장 집을 기습했어요.
마침 세포위원장은 없습디다. 여맹위원장 집엘 들어갔더니 잠을 자고있더군요. 여맹위원장을 납치해 가지고 나오다 물어보니까 며칠 전에 바뀌어서 옆집 여자가 됐다는 거예요.
나는 대원동지2명과 그 여자를 앞세우고 다시 신임 여맹위원장 집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신임위원장이란 여자는 캄캄한 방에서 신음을 하며 분만 중입디다. 아무리 적이지만 분만중인 여자를 납치해 오진 못하겠습디다.
그냥 돌아 나오다 전 여맹위원장은 돌려보내고 청장년 3명을 납치해 가지고 왔어요.
새벽 5시쯤 모선에 승선해서보니 여해진역에 정차중인 우리가 기습했던 기차는 7함대의 함포사격에 얻어맞아 수증기「탱크」가 폭발 중입디다.>

<함경선 터널 폭파까지도 기도>
▲이경수씨(당시Y부대해상대부관·현 신탁은행 돈암지점장·48)<52년 4월 22일 우리해상대원 55명은 함북 경성군 용현동의 함경선 「터널」을 폭파하러 들어갔습니다. 수색소대가 들어가 활동을 전개하다 경비중인 괴뢰군과 조우전이 벌어졌어요.
「터널」우측 두개의 고지에서 퍼붓는 적의 기총소사에 유재복 소대장이 전사하고 말았어요. 적은 후퇴해 고무「보트」에 오르는 대원들을 추적, 맹 사격을 해댑디다.
예인선에 타고있던 미 고문관「애치슨」중위와 「헨스컴」상사가 달러오더니 용감히 앞으로 나와 응사하더군요.
「애치슨」고문관은 유 소대장의 시체를 건지러 가겠다고 나섭디다.
이때 예인선에 타고있던 전통역관이 적탄에 흉부관통상을 입고 즉사했어요.
이렇게 되자 고문관은 시체를 찾으러가겠다던 뜨거운 전우애를 억누르고 진두 지휘해 10여분간 적과 불 뿜는 교전을 벌였어요.
이 사이에 소대원들은 「보트」와 수영으로 가까스로 무사히 빠져나왔어요.
52년 6월 23일 함북 명천군 보촌동 일대의 적해안 병력상황을 탐색하고 부락공산당원들을 납치키 위해 상륙했어요.
나와 황보현 소대장은 각기 수색조를 지휘해서 내륙지방과 해안선 연변을 수색해 들어가기로 하고 먼저 올라갔어요. 나는 대원들과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며 수색 전을 펴다 괴뢰군이 탄 목선한척이 보촌동쪽으로 접근해오는 것을 발견했어요. 우리는 백사장에 엎드려있다 적이 배를 대고 뛰어내리는 순간 달려나가며 일제사격을 가했읍니다.
제일먼저 뛰어내린 괴뢰군 특무장을 사살하고 정박한 목선을 항해 계속 쏴댔더니 캄캄한 밤이라 보이지는 않지만 적병들이 물 속으로 떨어지는 소리만 들립디다.

<각종 노획물 영도본부서 전시>
황보현 수색조와 대기 중이던 주력대원들이 주홍길 대장의 지휘로 모두 달려와 소탕전을 벌였어요.
수중에 떠있는 목선을 끌어 내와 보니 어부 2명이 타고 있읍디다.
배 안을 수색해보니 괴뢰군 중대본부용 서류와 각종보급품이 적재돼 있더군요. 사살된 괴뢰군 특무장의 옷을 벗겨 싣고 어부들에게 목선을 우리 해인 선에 끌어다 매게 했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보촌동 일대의 적정을 수색하고 돌아와 어부한테 물어보니 타고있던 10여명의 괴뢰군은 몸에 총을 맞고 물로 뛰어들었다고 합디다.
벗겨온 적 특무장의 군복 주머니에서는 본부중대 수송대원 10명이 찍은 사진을 발견했어요.
제 서류와 기관총 등 각종노획물은 영도본부로 가져와 전시회를 열고 대원들 교육에 사용했읍니다.>
◇주요일지(1951년 12월 7·8·9·10일)
※12윌 7일 ▲전전선 계속 평온 ▲B-29 청천강 교량 등을 폭격 ▲휴전회담 합동분위 8개항에 대한 수정안 제출 ▲「유엔」·공산양군 참모장교, 비무장지대 획정 작업 완료 ▲「유엔」총회, 중공「유엔」가입안 39대 7로 부결.
※12월 8일 ▲지상전투 계속 소강 ▲휴전 합동분위서 공산 측, 「유엔」군 측의 새 제안 전면거부 ▲미 국무차관보에 「마기」씨 임명 ▲「유고」, 서독과의 정상외교수립 결정.
※12월 9일 ▲미 하원「매크라스」등 3의원 한국전선 시찰 ▲허 국무총리 지리산공비 토벌전 시찰.
※12월 10일 ▲서부전선서 소규모 탐색전 ▲휴전회담 합동분위 「유엔」대표, 포로교환 토의 위한 분과위설치제안 ▲미「트루먼」대통령, 합참·국방·국무성 수뇌부와 한국휴전문제를 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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