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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참치·호두·아몬드에도 거센 차이나 바람

중앙일보

입력

올봄 인천 수협 경매장에서는 꽃게 값이 크게 출렁였다. 4월 초만 해도 ㎏당 2만3000원 선(인천 경매가 기준)에 거래되던 대(大) 사이즈의 꽃게 가격이 4월 말에는 ㎏당 2만7000원까지 급등한 것. 원인은 중국 상인들이었다. 중국 상인들이 경매장까지 찾아와 일주일 만에 10t가량의 꽃게를 사들여 내수 물량이 줄어들면서 가격이 급등했던 것이다. 이세우 이마트 수산물바이어는 “중국 상인들이 냉동 꽃게를 사들이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경매장을 통해 매입에 나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활 꽃게뿐 아니라 지난해 가을에 저장한 냉동 꽃게도 이들이 사들이면서 일찍부터 물량이 소진됐다”고 말했다.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며 각종 원자재와 금속류 등을 끊임없이 빨아들이던 중국이 이제는 세계의 식료품 시장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입맛도 고급스러워졌다.

 대표적인 게 유제품이다. 네덜란드 최대 은행인 라보뱅크는 최근 보고서에서 앞으로 2년간 중국의 낙농업 제품 수입과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의 우유 소비국으로 자리 잡은 가운데 2011년에만 90만t이 넘는 유제품을 수입했다. 2008년 중국 내에서 발생한 멜라민 분유 파동 이후 외국산 유제품 선호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문제는 중국 내 소비가 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제품 가격이 뛰어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라보뱅크 측은 “중국 내 소비 증가가 전 세계적인 공급량 감소와 맞물려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30여 년간 유지해 온 1자녀 정책을 폐지하자 뉴질랜드 달러화가 연일 강세를 보이는 것도 중국 시장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낙농 강국인 뉴질랜드는 지난해 분유를 포함한 유제품을 중국에 18억 달러(약 1조9000억원)어치 수출했다. 자녀들을 더 갖기 시작하면 유제품 사용도 덩달아 크게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11년 중국 내 도시주민 1인당 유제품 소비량은 17.9㎏. 하지만 이는 세계 평균의 20%, 개발도상국의 3분의 1 수준이어서 수입 물량은 앞으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호주의 워남불치즈앤드버터팩토리(이하 워남불)는 최근 3억2700만 달러(약 3457억원)에 캐나다의 최대 유제품 업체인 사푸토에 매각됐다. 인수 가격은 시장 예상치보다 2000만 달러 이상 더 비쌌다. 사푸토가 워남불을 고가에 인수한 건 이 회사의 제품 대부분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로 수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14일(현지시간) “워남불의 아시아 매출이 늘고 있어 내년에는 2000만 호주달러(약 199억원)의 순이익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지난해 순이익 규모(749만 호주달러)를 한참 뛰어 넘는다”고 보도했다.
 
연어 국제가격 38% 올라 … 새우는 두 배

“그나마 쌀 때 많이 먹자.”

 최근 참치 업계 종사자들이 농담처럼 하는 말이다. 주 소비국인 일본의 경기침체와 맞물려 얼어붙던 참치 시장에도 중국인들의 싹쓸이식 수입 덕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책임 있는 참치 어업 추진기구(OPRT)’에 따르면 2000년 200t에 그쳤던 중국의 횟감용 참치 시장 규모는 지난해 1만t으로 12년 새 50배나 커졌다. 가격도 뛰고 있다(그래프 참조). 참치 캔 소비도 빠르게 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2006년 3억9500만 위안(685억원)이었던 참치캔 시장 규모는 2011년 13억6100만 위안(2361억원)으로 세 배 이상 성장했다. 중국 현지 시장 조사업체인 S&P컨설팅은 올해부터 2016년까지 중국 내 참치캔 시장이 연 평균 12.6%씩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요 수산물들의 거래 가격도 오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3년 10월 ㎏당 4.52달러(노르웨이 수출가격 기준)에 거래되던 연어 값은 지난달 현재 6.24달러로 38% 뛰었다. 연어는 최근 중국 내에서 소비가 크게 늘어나는 어종 중 하나다. 새우도 파운드당 8.31달러에서 16.09달러로 두 배 가까이 비싸졌다.

 굴 같은 어패류에도 중국인들의 수요가 몰리는 가운데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유엔 산하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중국의 굴·홍합 수요량이 연평균 20%씩 증가하면서 가격이 최근 3년 사이 두 배나 올랐다. FAO는 “중국인들이 회나 초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이들 어종에 대한 소비량이 줄어들 기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국 내 쇠고기 소비도 꾸준히 늘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는 최근 “지난 20년간 중국 내 쇠고기 소비량이 연평균 6.1%씩 늘었다”고 밝혔다. 일례로 지난해 1년 동안 호주에서 3만2000t의 쇠고기를 수입했던 중국은 올해 1분기에만 4만t의 호주산 쇠고기를 수입했다. 지난해 중국의 쇠고기 소비량은 559만7000t으로 1992년(172만9000t)의 3.24배로 커졌다.

 중국인들의 소득·소비 수준이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호두·아몬드 같은 견과류의 수입량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산 호두의 경우 캘리포니아 호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4개월 동안 중국의 수입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4.1% 늘어난 5만1000t. 이는 캘리포니아 호두협회 전체 수출 물량의 50%를 넘어서는 수치다. 덕분에 지난해 11월 파운드당 2.7달러 선이던 호두 수출 가격은 올해 11월에는 3.8달러로 뛰어올랐다. 미국산 아몬드 수입도 늘어났다. 캘리포니아 아몬드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의 중국의 아몬드 수입 물량은 7만t을 돌파해 전년보다 10%가량 늘었다.

 중국 시장의 성장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불황에 빠진 세계 경제에 활력을 주는 몇 안 되는 신(新)시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는 평가다. 최근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 폐지 방침에 기저귀·분유 같은 유아용품 업체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한 게 대표적이다.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의 유가공 업체들도 중국 시장을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여기고 진출 전략을 짜고 있다. 미국의 축산 전문지인 비프(Beef)는 지난 8월 “쇠고기 산업의 향후 전망은 무척 밝다”며 “중국이라는 든든한 수요처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국내 유통업체, 대책 마련에 부심
국내 주요 유통업체들은 중국의 수요 급증이 국내 식탁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8월부터 칠레산 호두를 수입해 팔고 있다. 중국발 수요가 늘어난 미국산 호두를 대신해 새로운 산지를 개발한 것이다. 25%의 관세를 적용 받는 미국산과 달리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덕에 무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강점이다. 껍질을 깐 탈각 아몬드 대신 껍질째 로스팅한 비탈각 아몬드를 들여와 수입 단가를 20%가량 낮추는 전략도 쓰고 있다.

 이마트는 외국 현지 목장에서 직접 송아지를 기르는 방식으로 수입 쇠고기 가격을 낮추고 있다. 이마트는 호주 축산업체인 AACO의 목장에서 ‘이마트 전용 소’를 키워낸 뒤 이를 전량 들여오고 있다. 이마트 김상민 부장은 “한 해 4000마리 이상을 키워서 들여오면 수입 쇠고기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롯데마트도 2008년부터 호주 빅토리아주 등에서 생산되는 일반 쇠고기 대신 15~20%가량 값이 싸면서 육질이 우수한 호주 태즈메이니아 지역의 쇠고기를 들여와 판매 중이다.

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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