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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토대지진 때 일 헌병도 조선인 총살 … "가담 안 했다" 일본 정부 거짓 드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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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23년 일어난 간토대지진으로 도쿄 시내의 번화가인 긴자(銀座) 거리가 폐허로 변한 모습. [중앙포토]

1923년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일본 헌병이 조선인 학살에 가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53년 이승만정부가 작성한 것으로 지난 6월 주일 한국대사관 청사 이전 과정에서 발견돼 최근 공개된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를 통해서다.

 국가기록원의 의뢰를 받아 이 명부를 분석한 김도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은 24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명부엔 함경도에 연고를 둔 박성실(30)씨가 일본 헌병에게 총살됐다는 기록이 나온다”며 “이는 대학살 당시 일본 관헌이 가담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했다.

 간토대지진은 23년 9월 1일 도쿄·요코하마 등 일본 간토 지방에서 일어난 규모 7.9의 대지진이다. 14만여 명이 죽거나 행방불명됐다. 가옥 25만여 채가 무너지고 45만여 채가 불탔다. 당시 일본 내각은 “조선인과 사회주의자가 혼란을 틈타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며 계엄령을 선포했고, 이후 조선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이 자행됐다.

 김 위원이 소개한 명부의 내용에 따르면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에 살고 있던 동포들의 참혹한 피살 장면을 엿볼 수 있다. 경남 창녕 출신의 한용선(23)씨는 ‘쇠갈쿠리로 개 잡듯이 살해당했다’고 나와 있고, 울산이 고향인 박남필(39)·최상근(68)씨는 ‘곡괭이로 학살됐음’이라고 쓰여 있다. 일본인에게 죽창으로 살해당한 경남 함안 출신 차학기(40)씨와 군중에 피습당해 사망한 경남 밀양 출신 최덕용(26)·이덕술(22)씨의 사례도 명부에 기록돼 있다. 김 위원에 따르면 일본 진재시 피살자 명부에 나온 290명 중 실제 대지진 피살자는 198명으로 조사됐다. 나머지는 잘못 기록됐거나 3·1운동이나 독립운동 참가자 등이다. 53년 이승만정부는 국내에 있던 유족들의 증언을 취합해 이 명부를 만들었다. 숫자는 많지 않지만 구체적인 명단이 나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게 김 위원의 설명이다. 지금까지 간토대지진으로 인한 조선인 학살자 규모는 6661명(독립신문 1923년 11월 28일)부터 2만여 명(독일 자료) 등으로 다양하게 추정돼 왔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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