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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콩깍지는 눈에 '씌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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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자두지작갱 녹시이위즙 기재부하연 두재부중읍 본시동근생 상전하태급 : 콩을 쪄 국 만들고 콩자반 걸러 즙으로 하려는데, 콩대는 솥 아래서 타고 콩은 솥 안에서 울고 있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났건만, 지지고 볶는 것이 어찌 이리도 급한가.)’ 조식(曹植·192~232)이 지은 ‘칠보시(七步詩)’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편에 나온다.

는 콩깍지, 콩대를 가리킨다. 를 콩깍지로 번역한 것이 더러 보이는데, 콩대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콩깍지는 콩을 털어내고 남은 껍질이고, 콩대는 콩을 다 떨어내고 남은 부분을 이른다. 콩대는 불이 잘 붙어 땔감으로 쓴다. 형이 동생을 좨치는 것을 콩대를 태워서 콩을 찐다는 상황에 빗댄 것이 절묘하다.

 콩깍지와 관련해 많이 쓰이는 표현이 있다. 바로 “걔가 그렇게 한 걸 보면 틀림없이 눈에 콩깍지가 씌인 거지”처럼 눈에 콩깍지가 ‘씌웠는지, 씌었는지, 씐 건지, 씌인 건지’ 어떻게 무엇을 했다는 것이다. 무엇엔가 홀려 제정신을 잃을 만큼 홀딱 빠져들 경우에 흔히 이렇게 표현한다. 홑따옴표 안의 네 가지 표현 중에는 어떤 것이 맞을까.

 ‘씌우다’는 ‘쓰다’의 사동사이므로 누가 내 눈에 콩깍지를 씌우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내 눈이 그것에 덮여 가려지는 것이므로 ‘씌웠는지’는 틀린다. ‘씌다’는 이미 그 자체로 피동형이다. ‘씌이다’는 ‘씌다’의 이중피동형이므로 마찬가지로 맞지 않다. 그리고 무엇이 눈에 덮이거나 가려지는 상황이므로 ‘눈에 콩깍지가 씌다/씌었다’로 적는 것이 바르다. 즉 ‘씌었는지/씐 건지’만이 맞게 쓴 것이다.

 “눈에 콩깍지가 씌인 거지”에서 ‘씌인’은 ‘씐’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내가 책 제목으로 이것을 선택한 것은 말 그대로 콩깍지가 씌워서 그랬다네”의 ‘씌워서’는 ‘씌어서’로 고쳐야 옳다. ‘씌다’의 형태를 분석하면 ‘쓰이다’이지만 눈에 콩깍지가 덮여 가려지는 상황에는 ‘쓰이다’가 아닌 원형 ‘씌다’를 그대로 사용하고 이를 활용한 형태를 쓰면 된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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