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神童 부전자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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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디에고 마라도나(43)의 아들인 디에고 마라도나 주니어(16)가 유럽 축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외신은 스코틀랜드 디비전1(2부리그 격)클럽인 클라이드의 구단주 등이 마라도나 주니어를 임대 형식으로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세리에B 나폴리 유소년팀 소속인 마라도나 주니어는 14세 때 이탈리아 17세 이하 대표팀에 뽑혔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 마라도나는 1993년 DNA 검사 결과 양성반응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내 아들이 아니다"라며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마라도나 주니어는 "히바우두를 모델로 훈련하고 있다. 아버지같은 (스캔들 많은)축구선수는 되고 싶지 않지만 마라도나라는 이름은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외모에다 축구 재능까지 쏙 빼닮은 '주니어'를 보며 인간적 갈등을 느끼고 있을 마라도나의 심정을 가상 독백 형식으로 엮어본다.

"한동안 잠잠하던 녀석이 또 다시 나타나 내 속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93년에 이탈리아 나폴리에 사는 크리스티나 시나그라라는 여자가 갑자기 자기 아이가 내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DNA 검사인가 뭔가를 앞세워 이탈리아 법정에 친자확인 소송까지 했지만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어쨌든 그녀는 승소했고 나는 95년 이후 매달 양육비 조로 2천5백달러(약 3백만원)씩을 뜯기고 있다.

2001년에는 열네살이던 그 녀석이 17세 이하 이탈리아 대표팀에 뽑혔다고 온 이탈리아가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마라도나 아들이라니까 오죽 잘 할까' 싶어서 뽑은 모양인데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실력을 인정할 수 없다.

그 나이 때 나는 아르헨티나 세보이타스 팀에서 1백36경기 무패 기록을 세웠다. 함부로 나하고 비교하면 안되지. 오죽하면 프랑스의 축구영웅 미셸 플라티니가 "내가 축구공으로 보일 수 있는 묘기를 그는 오렌지를 가지고 할 수 있었다"고 말했겠나.

요즘은 가끔씩 옛날 생각에 잠기곤 한다. 84년부터 91년까지 나폴리에서 나는 정말 잘했고, 또 행복했다.따르는 여자들도 많았었지….

솔직히 그 녀석을 보고싶은 생각도 있다. 나처럼 왼발을 잘 쓰는지, 드리블 할 때 중심은 잘 잡혀 있는지. 슈팅할 때는 차는 발을 너무 뒤로 보내면 안되는데. 나만큼 허리 힘이 좋다면 테이크백을 크게 하지 않아도 강한 슛을 날릴 수 있는데….

스페인 명문 발렌시아가 스카우트하려고 했을 때 "아버지 팀에서 계속 뛰고 싶다"며 거부했다던 그 애가 "가끔은 아버지를 증오하기도 한다"고 했다니….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내 자식은 사랑스런 딸 둘 뿐이야. 더 이상 이런 저런 소문에 말려들면 안되지.

지금 아르헨티나에는 나를 '축구의 신(神)'으로 모시고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나는 신이 아니다. 오히려 86년 멕시코월드컵 잉글랜드전 당시 내 손에 강림하셔서 골을 넣어주신 그분께 무릎을 꿇고 묻고 싶다.

"오 신이시여, 나는 어찌해야 합니까."

정영재 기자

▶나이:16세
▶태어난 곳:이탈리아
▶소속팀:이탈리아 나폴리 유스팀
▶경력:이탈리아 17세 이하 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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