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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경의 어머니 약값 벌이 나선 효녀 구두닦이 충주의 황태희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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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저씨 구두 좀 닦으세요. 약을 못 사면 우리엄마는 돌아가시게 돼요.』 어린이날인 5일, 충주시 성서동 수경다방 문턱에서 가냘픈 소녀 황태희양(13)은 만성 유방암으로 도립병원무료병동에서 사경을 헤매는 어머니의 약값을 벌어야 한다고 구두 통을 들고 다녔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463의15에서 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임옥선씨(40)와 단 둘이 살아온 황양은 6년 전 만해도 서울 K제약회사 사원이던 어머니의 월급으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 속에 자란 외동딸.
그러나 6년 전 어느 가을날 오른쪽 유방에 돋보인 이상한 멍울이 유방암으로 의사의 진단이 내려지면서 심한 노이로제 증세까지 일으킨 황양의 어머니가 자리에 눕게되자 가산은 약값으로 없어지고 어머니가 저축했던 38만원마저 빌려간 여학교 동창생이 갚지 않은 채 행방을 감춰 의지할 곳 없는 두 모녀는 관악산 골짜기 번지 없는 움막살이로 전락하는 알거지 신세가 됐다.
이 때부터 나이 어린 황양은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 탐스럽게 자란 머리를 자르다못해 연약한 팔뚝에서 피를 뽑아 팔았으며 배고픔을 구걸로 채우기에 서울 아현국민학교도 5학년에서 중퇴했다.
작년 8월17일, 6촌 언니를 찾아 나선 어머니를 따라 충주에 온 황양은 충주역 광장에서 지쳐 쓰러진 어머니를 붙들고 울다 때마침 지나던 고마운 아저씨의 도움으로 도립 충주병원에 구료 환자로 입원하는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병원 측이 주는 하루 l백80원씩의 약값과 주식대로는 어머니의 중병이 차도가 없어 낮에는 구두닦이, 밤에는 껌팔이를 하며 하루 박트림 약 2알(2백40원)을 사기 위해 9개월째 충주시내 다방가를 헤매고있다.
『텃세를 내라』고 구두닦이 소년들에 얻어맞기도 여러 번, 숨어서 몰래 구두를 닦은지 2개월만에 어머니 병을 고치려는 어린 소녀의 효성에는 매질하던 구두닦이 소년들도 감동, 지금은 중앙시장 안 자리를 맡았으나 하루 수입은 어머니의 약값 2백40원 대기도 『힘에 벅차다』고 울먹이고있다.
고향이 충남 아산군 둔포면 시포리인 황양의 어머니 임 여인은 대전여고를 거쳐 경희대 체육과 2년까지 다닌 인텔리 여성-. 뛰어난 미모로 대한통운·제약회사 등지서 11년간 화려한 직장생활을 하기도 했던 그녀는 『어미 병을 고치겠다고 책가방 대신 구두 통을 들고 다니는 딸을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다. [충주=김경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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