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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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캘린더도 따지고 보면 어수룩한 데가 많다.
우리가 요새 쓰는 일력을 그레고리력이라고 한다. 1582년에 그레고리 교황이 개정한 것이다.
그 이전에는 1천여 년 동안이나 줄리언력이 통용됐었다. 1년을 3백60일로 하던 이집트력을 개정하여 4년에 한 번씩 5일을 가산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레고리력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우선 여기에는 영이라는 기점이 없다. 따라서 가령 기원전 3년에서 기원 2년까지는 정확하게는 5년이 되어야 할텐데 4년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20세기라고 할 때는 정확하게는 1901년1월1일부터 2천년12월31일까지를 말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곧잘 1900년1월1일부터 20세기로 잡는다. 그리고 2000년부터는 21세기가 된다고 여기고 있다.
계절감과의 오차는 더욱 심하다. 오늘은 구력으로는 입하. 흔히는 이날부터 8월7일께의 입추까지를 여름의 계절로 친다.
사실은 8월7일께에도 염서가 한창이다. 또 오늘부터 여름이라지만 날씨는 봄에 더 가깝다.
중국에서는 여름이 우리네보다 일찍 찾아드는 때문에서 일게다. 이처럼 계절이란 따지고 보면 공간과 관습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모양이다. 시차가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래서 외국의 문학작품을 번역할 때 뜻하지 않는 오역도 생긴다. 지난 1일자 분수대에서도 지적했지만 영국의 여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영국에서 여름은 캘린더 상으로는 6월20일께의 하지에서부터 추분까지를 말한다. 그 중에서도 기온은 8월에 제일 높다. 그렇다하더라도 8월중에 섭씨 26·7도를 넘는 날은 거의 없다.
그러니까 아무리 셰익스피어가 『상상할 수 없을만한 더위』라고 말해도 우리가 여름에 겪는 것과 같은 폭서는 결코 아니다.
미드·서머라 해서 여름 한복판으로 여기는 것도 영국의 기후와 관습을 잊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인은 6월에 들어서야 비로소 동복을 벗고 춘추복과 스프링·코트로 갈아입는 것이다.
그러니까 6월 중순을 mid-summer라 부르는 것은 1년을 여름과 겨울 2계로 나누던 때부터의 버릇에서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마크베스에서 던칸은 제비를 보고 『이 여름의 손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헨리4세 1부에도 『5월처럼 힘이 왕성하고, 미드·서머의 태양처럼 의젓하게…』라는 구절이 있다. 오늘이 입하라지만 우리는 아직 봄이다. 언제까지나 봄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서만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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