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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완전한 「알피니스트」로서 백록담에 오르기는 천정일 이라는 일본 학생이 이끈 당시의 경성제국대학 산악부가 처음 이었다. 1925년의 일이었다.
이때 조난으로 한 대원이 죽었으나 눈에 덮여 시체를 찾을 길이 없었다. 그러자 제주도의 사람들은 신방이라는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
이때 처음으로 접한 제주도의 독특한 무속에 끌린 천정일은 사회학을 전공하기로 뜻을 세웠다. 수년 전에 그는 죽었지만, 그의 딸이 이번에는 그의 유지를 받들어 한국문화를 연구하러 서울에 유학중이라는 얘기가 있다.
학자들에게 있어 제주도만큼 진기한 보고도 드물다. 문화인류학자나 민속학자·언어학자들만이 아니다.·
아직도 한라산의 원시림에는 임상의 계층별 구조가 뚜렷하고 세계적으로 희귀한 구상나무를 비롯한 6백 여종의 수목이 우거져있다.
이곳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길을 만들 계획을 제주도와 건설부에서 세우고 있다고 한다. 그것도 순전히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라 한다.
백록담에 이르는 길은 몹시 험준하다. 접근하기가 어렵기에 더욱 아름다와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백두산보다도 백록담을 시인들이 더 즐겨 노래한 것도 그 신비로운 아름다움 때문에서였을 것이다.
백록담의 아름다움은 그 산세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을 둘러싼 원시림에도 있다. 그 속에 차도가 생기면 관광객들이 더욱 몰려 들것은 틀림없다. 관광객들이 떨어뜨리는 돈도 늘어날게 틀림없다.
그러나 이 보다도 더 분명한 것은 차도가 생기면 천연림이 결딴나게 되리라는 사실이다.
우선 7m폭의 길을 닦으려면 적어도 10m폭의 나무는 베어 없애야 한다. 임상이 결딴나는 것은 물론이고, 차들이 뿜어낼 매연으로 나무들이 시들 것도 분명하다. 멀지않아 백록담에 이르는 길은 조금도 신기스럽지 않게 될 것이다.
만일 한라산 등산 길이 북악「스카이웨이」나 다름이 없어진다면 굳이 제주도까지 가서 「드라이브」를 즐길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라산 둘레의 예부터 내려오던 민속이 자취를 감출 것도 틀림없는 일이다. 조금도 제주도는 신비스럽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 신비로움이 남의 나라 학생까지를 학자가 되게 만들었었다. 그 신비로움으로 우리네는 장사를 하려고만 한다. 그리고 그것을 파괴해가며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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