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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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무런 경험 없이 비좁은 현관을 보수하여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차렸다. 결국 여섯 식구의 생계를 아빠의 월급만으로는 가름할 수 없기 때문에서이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이웃집 아이들의 견물생심을 조성하므로 부모들의 마음과 주머니를 위축케 하니 자연 비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굳이 나쁘게만 볼 것 아니라 편리한 봉사(?)도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해 본다. 즉 갑자기 귀한 손님이 온다든가, 밤이 늦었다거나 날이 궂은 때 편리하고 또 돈이 없을 때 외상 하기 손쉬운 곳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술이나 과자류 등을 요구대로 가져갈 수 있고 대금은 한달 후에 갚아도 대환영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봉사를 하는 나는 애로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도매상에서 꼬박 현금으로 물건을 구입해오면 많이 팔리지 않아서 애타고 외상을 놓으면 착실한 사람은 한달 전에 갚지만 보통 두달, 심하면 석달을 끄는 이가 있다.
혹자는 구멍가게가 어둡다 느니, 그래도 장사가 괜찮다느니 들 하지만 막상 제각기 다른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자니 역겹고 피곤하기 짝이 없다.
다음은 「집안손님」, 즉 개구장이 사내 하나를 포함한 어린 4남매가 문제다.
세 살 짜리 막내는 무조건 손을 내민다. 그러다가 내 얼굴이 험악해지면 그만 울음작전이니, 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그대서 어떤 때는 불쌍해서 한번 주고 두번 주면 곧 버릇이 되어 안 주고는 못 배긴다.
개구장이 아들놈은 달라는 말도 없이 내 눈만 피하면 슬쩍 몇 개 씩 주머니에 넣는다. 그래도 제일 신사적(?)으로 나오는 것은 역시 장녀다. 어엿하게 외상장부에 적고 스스로 먹는다. 어디서 나오느냐? 하면 아빠한테서 돈을 얻어 갚는단다.
이런 일 저런 일 생각하니 하루에도 몇 번 그만 두고 싶지만 생활위협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데서 오늘도 보람찬 시름에 졸린다.
허준자 (경남 진해시 충의동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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