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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들의 친구로 40년 … 여든 살 생일상을 다 차려줍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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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조욱현 성라자로마을 토마스 원장신부(왼쪽)와 봉두완 전 돕기회 회장은 “이젠 우리가 저개발국을 도와야 할 때”라며 활짝 웃었다. [오종택 기자]

지난 2일 경기도 의왕시 성라자로마을에선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마을에 사는 한센병(나병) 환우들이 준비한 봉두완(78) 전 성라자로마을 돕기회 회장의 생일 잔치였다. 이름하여 ‘봉두완 회장의 40/80 축하연’. 봉 전 회장이 라자로마을 사람들의 친구가 된 지 40년, 그리고 한국 나이 80세가 됐다는 뜻이다. 라자로마을 환우 48명이 모두 참석했다.

 봉 전 회장은 “이렇게 오랫동안 라자로마을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그를 서울 서소문동의 작은 카페에서 만났다. 조욱현(57) 성라자로마을 토마스 원장 신부도 자리를 함께했다.

 오후 4시 카페는 한적했다. 농담 잘하고 활달한 봉 전 회장은 카페에 들어서며 “이분이 라자로마을 원장 신부입니다, 라자로마을 아시죠?”라며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주인은 “신부님, 저도 라자로마을 후원자에요. 25년 전 아버님 돌아가시면서부터 생전 아버님 담뱃값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월 3000원씩 보내고 있어요”라며 반가워 했다.

 - 성라자로 마을을 돕기 시작한 건 언제.

 “1970년 TBC 프로그램 ‘안녕하십니까, 봉두완입니다’를 진행하고 있을 때였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이경재 신부님이 도와 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이 신부님은 세상에서 멸시받던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낙원 건설을 꿈꿨지요.”

 - 한센인들과의 만남이 꺼려지진 않았나.

 “처음엔 라자로마을에 사는 원생들과 2m 이상 떨어져 대화를 하곤 했어요. 6개월 정도 지나 악수하고 같이 밥 먹고 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친구가 됐어요.”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조 신부는 “나환자들과 친구가 되는 데 1년, 2년이 걸리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평생 손을 못잡는 사람들도 있다”며 “봉 회장은 40년 간 한결같이 마을 사람들과 가족처럼 어울려 왔다”고 전했다.

- 성라자로마을에 애정을 기울이는 이유라면.

 “내가 아직까지 건강한 건 모두 라자로마을 가족들이 기도해 준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진짜예요. 죽어 하느님 만나면 왜 날 팔십이 넘도록 살게 했냐고 물어볼 건데, 아마 라자로마을 사람들 도와주라고 오래 살게 했다고 하실 것 같아.”

 -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많은 이들이 후원을 하다 말다 했는데 홍라희 여사는 30년 동안 남편인 삼성 이건희 회장의 생일인 1월 9일 이곳에 와서 환우들에게 선물을 전하고 식사를 대접했어요. 30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는 게 대단하죠.”

 - 고 육영수 여사가 샤워시설을 지어주면서 라자로마을이 많이 알려졌는데.

 “1950년 처음 설립됐을 땐 판잣집 세 채뿐이었는데, 육 여사가 71년 이곳을 다녀가면서 한동안 기업·단체 등에서 후원금이 답지했지. 요즘엔 후원자가 너무 줄어 매달 1000만원 이상 적자를 보고 있지만 말예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봉 전 회장은 “나야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신부님이 하라는 대로, 돕는 거지. 계획은 원장님한테 물어보라”고 했다. 조 원장은 “노환으로 고생 중인 라자로마을 가족들을 잘 모시는 것, 그리고 해외로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것” 등을 꼽았다. “국내엔 한센병 추가 발병이 거의 없지만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은 창궐하고 있습니다. 50~80년대 우리가 낯 모르는 외국인들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라자로마을을 통해 저개발국의 한센병 환자들을 도우려 합니다.”

글=박혜민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봉두완 전'라자로마을 돕기회'회장
"홍라희 여사도 30년째 매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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