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갑자기 주위 사람이 다 싫어졌다는 고2 여학생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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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저는 강남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2학년 여학생입니다. 요즘 제 주위 사람이 다 싫어요. 친구는 물론이고 가족도 예외가 없어요. 특히 친구는 단점밖에 안 보여요. 다들 이기적이고 착한 척하는 것 같아 정말 싫어요. 친구 하는 말에 아예 반응하기 싫어서 친구랑 있으면 무뚝뚝해질 정도입니다. 1학년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2학년 올라와서 갑자기 이러네요. 심지어 대학 가면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연락을 끊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어요. 전에는 친구들과 노래방 가거나 밥 먹으면서 공부 스트레스를 해소했는데, 이젠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 게 불편하니 혼자 삭이고만 있어요. 또 지금 학급 반장인데 친구에 대한 관심이 뚝 떨어져 반장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되니 그것도 걱정입니다. 한창 친구가 좋을 나이라는데 왜 친구가 싫어지게 된 걸까요.

A 친구가 싫어졌다고요. 번아웃 신드롬(Burn-out syndrome), 즉 소진증후군이 찾아왔네요. ‘번아웃’이란 말처럼 감성 배터리가 다 타버린 겁니다. 감성 배터리도 스마트폰 충전하듯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는데 충전 없이 쓰기만 하면 이렇게 방전돼 버립니다.

 감성 배터리가 방전됐는데 왜 사람이 싫어지냐고요. 그건 소진증후군에 빠진 뇌는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타인과 교감하려면 상대방 마음을 읽고 느끼는 공감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공감은 이렇게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지극히 생물학적인 과정입니다.

 뇌 활성도를 측정할 수 있는 기능성 뇌 자기공명영상장치를 활용한 실험 결과를 보면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에게 타인이 고통스러워하는 영상을 보여주면 통증과 연관된 뇌 영역의 활성도가 증가합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인지하는 거죠. 그러나 상대방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감성 에너지가 방전돼 버리면 공감 능력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친구가 귀찮은 존재로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전날 밤 친구와 사소한 일을 놓고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우고 헤어졌는데 하룻밤 잘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참을걸, 왜 그런 일로 싸웠지’ 하고 후회한 경험이 있을 거예요. 피곤한 뇌가 공감 능력이 떨어져 별것 아닌 일에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겁니다. 숙면은 마음을 충전하는 시간입니다. 공감 에너지를 충전하고 나니 특별한 노력 없이도 친구 마음이 이해가 가는 거죠.

 요즘 공감이란 단어가 유행입니다. 개인의 행복을 넘어 기업의 생존·발전을 위한 경영전략 측면에서도 조직원 간의 공감과 소통을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공감 능력을 타고나면 성공할까요. 이게 그렇게 간단치가 않습니다.

 우월한 공감 유전자를 가진 간호사가 병원에 들어왔습니다. 타고난 공감 능력이 있으니 환자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느낍니다. 친절 교육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진심으로 환자를 간호합니다. 주변의 칭찬이 자자합니다. 상도 받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회사생활을 잘하다 갑자기 그만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감 능력이 좋다는 건 그만큼 감성 에너지의 소비도 크다는 얘기입니다. 충전 없이 일만 열심히 하다 보면 불친절한 간호사보다 배터리가 더 빨리 소진됩니다. 감성 시스템이 닳아버리면 남을 공감하지 못합니다. 갑자기 환자가 짜증나고 싫어집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들고, 결국은 자신감을 잃고 일을 그만두는 겁니다.

 사연 주신 학생은 지금은 방전된 상태지만 공감 능력과 책임감을 타고났다고 판단됩니다. 리더십에 필수적인 게 공감 능력입니다. 그러니까 반장도 맡게 된 거겠죠. 그러나 위에서 말한 것처럼 책임감 있고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감성의 소진이 더 빨리 올 수 있습니다.

 친구들이 다 이기적이고 착한 척하는 것 같다고요. 네, 맞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이기적입니다. 착한 척합니다. 이 같은 이중성은 인간의 본질적인 특징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요구하면서도 다른 사람이 나에게 지나친 영향을 주는 건 거부합니다. 독립에 대한 욕구 때문이지요. 독립된 자유인으로 사는 욕구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동시에 존재하니 이중적인 특징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기적인 건 독립성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입니다. 나보다 남이 더 소중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매력적인 존재로 스스로를 포장하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그게 착한 척입니다. 나쁜 사람, 좋아하는 사람 없습니다. 나쁜 남자가 인기라고요. 사실 그 나쁜 남자는 착한 남자보다 한 단계 위인 멋진 남자입니다. 능력 있고 배려심도 많으나 아닌 척하는 밀당의 귀재랄까요.

 사람을 혐오하는 건 공감 능력이 떨어져 세상을 따뜻하게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닙니다.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는 철학의 탄생은 기존 가치에 대한 혐오감에서 시작되었으니까요. ‘세상은 착하다, 그래서 행복하다’기보다 ‘세상은 이중적이야, 그렇지만 사랑하며 살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더 성숙한 가치관이 아닐까요. 또 혐오감을 통해 내가 사는 세상과 사람에 대해 냉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고가 성숙해지는 거지요.

 사연 주신 학생, 너무 걱정 마요. 그저 ‘내가 열심히 살다 보니 방전됐구나, 열심히 산 합병증이군,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과정이구나, 멋진데’ 이렇게 생각해요. 이 말이 정답이니까요. 결코 나쁜 사람이 됐거나 성격이 망가진 게 아니니, 스스로를 탓하거나 비난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방전된 감성 에너지가 더 소진돼 버립니다. 거꾸로 자기 자신에 대해 따뜻하게 이해할 때 방전된 감성 배터리는 충전 모드로 바뀝니다.

 참, 친구가 싫어졌는데 이를 표현하지 않은 건 정말 잘한 거예요. 사람은 고통의 원인을 흔히 외부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친구가 변했다기보다는 내 해석과 반응이 전과 달라진 것이니, 이럴 때 밉고 독한 말을 내뱉으면 나중에 나만 더 속상해집니다.

 나랑 잘 맞는 친구를 찾아 보세요. 서로 착한 척할 필요 없는, 그리고 이기적으로 행동해도 서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를요. 나랑 잘 맞는 친구를 찾는 건 평생의 숙제입니다. 모든 친구를 좋아하는 것도, 또 모든 친구에게 사랑받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때론 가상의 친구도 위로가 됩니다. 예컨대 소설과 영화 속 인물 말입니다. 그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할 때 공감받으며 감성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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