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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과 두둔과 시찰과|8대 국회 첫 국감 낙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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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백차, 내도 탈 안내도>
『「사이드카」는 어디다 처박아 놓고 국정감사를 하러 오는데도 안내를 않는거야.』『어째서 백차 안내를 안하는거요.』
4일 보사위의 전북도청감사에서 이상신(신민) 최용수(공화) 의원은 이춘성 지사를 상대로 경찰백차가 감사반을 「에스코트」하지 않는데 대해 항의했다.
이·최 두 의원은 이날 감사를 통해 이런 항의를 하고는 『서울에 올라가면 김현옥 내무장관을 불러 이런 버릇없는 경찰국장을 혼내 주겠다』고 호통.
이 지사는 『분명히 내가 경찰국장을 데리고 고속도로 진입로까지 여러분의 영접을 나갔었다』면서 『어제 내무위 감사 때 백차 에스코트를 했다가 감사반으로부터 왜 소란을 피우느냐는 질책을 받고 백차안내를 안한 것뿐』이라고 답변.
이날 보사위원들이 감사를 끝내고 도청을 출발할 때는 백차가 동원되어 이리역까지 「에스코트」했는데 결국 이 지사는 백차「에스코트」를 해도 호통을, 안해도 호통을 받은 셈이 되었다.
공화당 의원들의 감사를 「격려감사」「대변감사」, 신민당의원의 감사는 「공격감사」「고함감사」란 평을 듣는다.
재무위감사에서 공화당의 정치국의원은 야당의원들의 공격으로 수감기관측이 답변에 궁해지면 답변을 가로맡아 대리답변을 하는 통에 「정부대변인」이니 「교통순경」이니 하는 얘기를 듣는다.
공화당의 강재구 의원 같은 이는 질의 전에 꼭 수감기관 칭찬을 하고 『노고에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는 인사를 잊지 않고, 기관장 호칭에 「님을 깍뜻이 붙인다. 그러나 김인(공화) 의원은 주택은행감사에서 답변이 모호하자 『공화당의원 질문에는 왜 성의껏 답변하지 않느냐』고 호통을 치기도.
신민당의 김용성 의원은 『일제의 잔재』 『민주반역행위』란 용어를 자주 쓰며 고함을 잘 지르는 호령형이고 홍영기 의원은 발언순서에 구애 없이 아무 때나 호령을 하고 질문을 하는 유격형이며 이종남 의원은 한진상사·대한농산·원풍기업 등 몇 개 특정업체만 계속 되씹는 저작형이다. 그래서 이 의원만 일어나면 동료 여·야 의원들로부터 『또 한진얘기냐』는 농을 듣곤했다.

<숫자에 약한 재무위원>
초선의원이 아니라도 국정감사에서는 흔히 폭로나 추궁발언에 열을 올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실무근」 이거나 「상식 밖의 얘기」를 해서 웃음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중에서도 신민당 전국구의 김용성 의원은 주택은행 감사에서 『주택은행이 본점건물을 30억원에 샀으며 어느 업체의 사택 및 대지조성에 10억원 융자했다』고 주장했는데 사실은 본점을 8억원에 샀고 융자액은 규정에 어긋남이 없는 2천3백만원뿐이라는것. 이상덕 은행장이 이런 사실을 답변했는데도 김 의원은 얼굴을 붉히며 계속 『30억원에 본점을 산게 잘한 짓이냐』고 숫자를 고치지 않아 명색 재무위원이면서 숫자에 약한 본색을 드러냈다. 그러자 한 여당의원은『숫자에 어두운 분이 틀린 숫자를 계속 고집하니 딱하다』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고 야당의 동료의원들도 『잘 모르면 우리한테 묻기라도 할 것이지 자칭 경제통이라면서 우리까지 창피스럽게 만들었다』고 불평.
재보험공사 감사에서는 이종남 의원(신민)이 예산서를 잘못보고 거의 늘지 않은 경비와 여비가 왜 두 배나 됐느냐고 따지다가 회사측의 해명을 듣고 물러서기도.

<비공개 일관한 국방위>
일부상위는 감사대상도 아닌 주요산업 업체에 대해, 감사 아닌 「시찰」만 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경과위의 경우 2일부터 9일까지 「산업시설 실태파악」이란 명목으로 포항종합제철, 울산공업단지, 부산의 동명목재를 시찰한 뒤 고속유람선 「엔젤」호로 남해안의 한려수도를 거쳐 호남점유에 들러 귀경하는 등 8일을 시찰여행으로 보냈다.
그런데 한려수도의 관광개발을 위해 면세로 도입한 「엔젤」호는 보통여객운임의 6배나 비싸게 받으며 일반여객선으로 쓰인다고 교체위의 부산해운국에 대한 국감에서 지적된바있다.
상공·건설위도 종합제철·울산공업단지 등을 시찰, 현지 공장간부들은 『똑같은 현황실명을 서 너 번씩 되풀이하는 번거로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불평.
또 보사위는 감사와 관계없는 소양강 「댐」을 돌아보느라고 감사일정에 들어있는 산재사업소에 대한감사는 생략했으며, 충남감사에서도 감사를 받으러 「브리핑·차트」까지 들고 달려온 충남산재사업소에 대한 감사를 바쁘다는 이유로 팽개치고 그대로 전주행
한편 국방위의 군부대감사는 국가예산의 거의 3분의1이 쓰여지고 있는 분야인데도 군사기밀이란 이유로 철저한 비공개감사로 일관했다.

<「서면」좋아하는 관서장>
국정감사 수감기관은 대체로 감사를 수월하게 넘기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브리핑」을 길게 해서 질문시간을 줄인다든가, 감사자료에 핵심적인 것은 묻고 빼고 껍데기만 내놓거나 곤란한 질문은 추후에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해놓고는 안낸다는 등등….
재무위감사1반의 경우 서울지방국세청에서 1시간20분, 수원연초제조창에서 2시간, 중부지방국세청에서 1시간반을 「브리핑」과 작업장시찰로 보냈다.
이때마다 야당의원들은 『왜 시간을 끄느냐』 『빨리 넘겨라』고 재촉을 하지만 감사반장인 이자현 의원은 『국정감사는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황보고를 듣는 것도 중요하다』며 이를 제시하고 했다.
감사자료문제는 가는 곳마다 말썽이 있었고 대우·분의 수감기관장들이 핵심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부임한지 얼마 안돼 모르겠다』『서면보고 하겠다』 『도표로 만들어 보고하겠다』고 어물어물 넘기려는게 보통.
교체위의 부산체신청 감사 때는 『전화가설료를 받고도 아직 달아주지 못한 전화가 몇 대나 되느냐』는 질문에 청장이 『서면으로 답변하겠다』고 했다가 『서면 좋아하네』란 핀잔을 당했다.
부산시는 내무위 감사에 대비하기 위해 하루 전에 있었던 경남도 감사 때 적잖은 염탐꾼을 보내어 질문내용을 적어다가 문답표를 만들었고 건설위의 감사를 받은 울산건설국의 장달진 국장은 예산 없는 사전공사에 대해 추궁을 받고 당황하다가 서상린 건설위원장으로부터 『국장은 냉수라도 마시고 차분차분히 답변하라』는 주의를 듣기도.
국감에서 여성의원들의 추궁전은 남성의원들에 비해 색다르다. 신민당의 김윤덕 의원은 「어머니회」의 선거관여, 무자격간호원의 처우문제 등을 중점적으로 따졌는데 전북도청 감사에서는 『지금까지의 가족계획사업은 어린이 생산저지에 중점을 두어왔는데 아이 없는 사람들의 생산장려대책은 어째서 세우고있지 않느냐』고 추궁.
편정희 의원(공화)은 이날 감사에서 69, 70년도의 돼지증산율을 물은데 이어 『71년도의 쥐잡기 운동에서 몇 마리나 잡았는지 몇 관 몇 근으로 무게를 따져달라』고 묻기도.
여성의원들은 충남에서 민유동 지사로부터 이동예식장의 설치를, 전북에서는 이춘성 지사로부터 주부대학의 활용설치 등을 보고 듣고 『일 잘한다』라고 칭찬도 한마디.
국감반의 감사행차도 갖 가지. 철도청을 감사하는 교체위감사반은 전국을 자동차편으로 돌았는데 보사위는 낡은 「버스」 한대를 전세 내어 모든 의원이 함께 타고 강원·춘천·전남 등 전국각지를 단체 강행도 또 지역감사에서는 그 지역출신의원들이 피감사기관옹호작전이 대단한데 농림위감사1반장인 한병기(속초-고성-양양) 의원은 강원도청 감사에서 여당인 정간용 의원의 추궁이 신랄해지자 『감사반장이 사표를 내도록은 하지 마시오』라고 부탁을 했으며 교체위의 전북도청감사에서 길병전(무주·장수) 의원은 김은하(신민) 의원의 질의가 길어지자 『짧게 짧게』라고 쪽지를 돌려 발언을 제지하기도.
감사에는 적잖은 신조어가 등장한다. 농림위2반은 예정에도 없는 칠곡군농협 등을 불시에 기습하고는 스스로 「게릴라」 감사라 명명했고 내무위의 채문식 의원(신민)은 「숫자맞추기 행정론」을 펴기도. 채 의원은 각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사 때마다 『오늘날의 행정은 「브리핑·차트」에 숫자 맞추는 놀음』이라면서 『농업통계와 심지어 범죄통계까지 엉터리여서 믿을 것은 인구통계밖에 없다』고 했다.
김수한 의원(신민)은 부산시의 부정을 따지며 「3국장·3재벌설」이 파다하다고 했고, 선거 때마다 교각이 선 진주진교를 가리켜 「선거다리」라고 이름 붙였다.
법사위에서도 황은환 의원(신민)은 법원에서의 「미니」뇌물을 「급행료」라 했고, 한병채 의원(신민)은 『처녀는 정조, 상인 신용, 기사는 정의가 생명이듯이 법관은 고고정신이 제일』이라고 했다.
농림위의 홍병철 의원(공화)은 충남도청 감사 때 『중공의 「유엔」 가입이 양잠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봤느냐』는 질문을 했는데 홍 의원의 논지는 중공의 진출로 양잠에 큰 타격이 있을 것이란 경고였다.

<조상에게나 들을 말씀>
법사위는 연간 1만건에 가까운 즉결재판, 구속영장의 남발, 약식 명령에 의한 벌금 예납제 등 침해받고있는 시민의 인권을 가는 곳마다 문제삼았다.
5일 광주지법 및 지검감사에서는 수감기관의 엉뚱한 답변으로 고함과 폭소가 터졌다.
김병규 지법원장은 약식명령에 따른 벌금예납제의 부작용을 추궁한 야당의원들의 질문에 『벌금예납제가 있는지 조차 모른다』고 답변, 김정두 의원(신민)이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일을 모르느냐』고 다그치자 『서류상의 확증이 없어 모른다』고 잡아떼어 언성높인 문답이 됐다.
김병기 지검검사장은 『전임지인 전주지검에 있을 때 무죄판결을 내린 간사의 집 주변에 형사를 잠복시키고 판사 전원의 집 약도를 조사시키지 않았느냐』는 박한상 의원(신민)의 질문에 『박 의원께 사과를 드린다. 박 의원의 말은 조상으로부터나 들을 수 있는 말로 명심하겠다. 나는 잠복근무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 이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감히 거짓말을 하겠느냐』는 요지로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오히려 감사반이 『그만두라』면서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또 교체위의 지방감사에선 낡은 차량을 방치하는 것은 행정당국의 미필적 살인과 같다는 얘기를 가는 곳마다 했는데 부산시와 경남도에선 『폐차에 관한 법을 만들어 주어야겠다』고 책임을 국회로 떠민 반면 김재식 전남지사는 『한꺼번에 폐차하면 교통난이 올 것 같아서…』라고 솔직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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