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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 시축 걷어찬 '개념 시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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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개그우먼 신보라가 지난 8월 1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대전 시티즌의 경기에 앞서 시축을 하고 있다. 신보라는 광복절에 맞춰 시축을 한 뒤 태극기를 꺼내 드는 세리머니로 화제를 모았다. [사진 FC 서울]

프로축구 시축(始蹴)이 달라졌다. 과거 시축의 주인공은 주로 구단주·체육단체장 또는 정치인들이었다. 하프라인에 공을 갖다 놓고 구두를 신은 채 엉거주춤 차는 ‘의전용’이 시축의 오래된 모습이었다.

 요즘은 팬들의 환호를 이끌어내는 화려한 시축이 대세다. 프로야구에서 시구로 이름을 알린 클라라·신수지·홍수아 못지않은 스타가 축구장에도 등장했다. 여배우 이태임(27)은 지난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 서울과 수원 삼성의 경기에서 시축했다. 오른발 강슛으로 골망을 가른 뒤 두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슛을 더 편하게 하기 위해 스판 소재 바지를 입은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수영 스타 박태환, 영화배우 이태임, 축구 송종국-송지아 부녀, 김연아, 예능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 골키퍼 이운재(위쪽부터)가 시축을 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구두를 신고 시축하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가 없다. [중앙포토·FC서울]

 ◆컨셉트에 맞게=FC 서울이 이태임에게 시축을 맡긴 건 빼어난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기 컨셉트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시축을 요청했다. 서울은 지난 10월 9일 수원과의 원정 경기에서 0-2로 졌다. 서울로서는 수원과의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복수의 무대였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응징자’의 주인공 이태임을 모셔온 까닭이다. 이태임 입장에서도 영화 홍보에 도움이 되고 축구팬에게 얼굴을 알릴 수 있어 흔쾌히 시축에 응했다. 경기 결과도 2-1 서울의 승리로 끝났다. 0-1로 뒤지다 역전승을 거뒀으니 시축의 컨셉트와 경기 내용이 딱 맞아떨어진 셈이다.

 서울은 2010년 전북 현대와의 홈경기에 걸그룹 티아라를 초청해 공연을 맡겼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다. 티아라가 전북 현대 유니폼 색깔과 똑같은 녹색 무대의상을 입고 나타나서다. 전북 현대의 서포터스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환호했고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됐다. 설상가상 경기도 0-1로 패했다. 행사를 진행한 담당자는 혼쭐이 났다. 그 후에는 시축과 행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의상은 FC 서울 유니폼을 입어야 하며 경기 컨셉트와 맞는 인물이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기상천외하고 유쾌하게=지난 7월 7일 서울과 성남 일화의 경기에서는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서 인기를 얻은 샘 해밍턴이 시축을 했다. 유쾌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중앙선에서 킥을 하는 대신 골대 앞까지 드리블을 해 골을 넣는 것으로 했다. 해밍턴이 직접 낸 아이디어다. 해밍턴은 시축 뒤 치킨존이라는 좌석에 앉아 닭튀김을 먹으면서 경기를 끝까지 관전했다.

 뛰어난 가창력으로 인기를 모은 개그맨 신보라(26)는 직접 시축 퍼포먼스를 만들어 왔다. 광복절인 8월 15일 열린 서울과 대전 시티즌 경기에서 시축을 한 뒤 태극기를 흔드는 세리머니를 했다.

 시축을 TV 프로그램이나 영화와 연결하는 시도도 눈길을 끈다. 서울은 9월 11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의 참가자들이 멋진 춤과 함께 시축을 하도록 했다. 그 모습을 현장의 팬들이 모바일로 투표해 평가에 반영했다. 2011년에는 배우 황정민이 영화 ‘댄싱퀸’에서 시축하는 모습을 경기 직전에 촬영하는 이벤트를 펼쳤다.

 수원 삼성은 출신 선수를 적극 활용한다. 골키퍼 이운재(40)는 지난 10월 9일 서울과의 경기에 초장거리 시축을 선보였다. 이운재가 중앙선에서 찬 공은 50여m를 날아가 골문 바로 앞에 떨어졌다. 역시 수원 출신인 송종국은 예능 프로 ‘아빠 어디가’에 함께 출연하고 있는 딸 지아(6)와 함께 시축했다. 아직은 수도권의 두 명문 구단이 시축 문화를 주도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시축을 통한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의 결합이 더 확산될 전망이다.

김환·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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