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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발한 소련에서의 한국어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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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소련의 한국학연구는 세계적으로 가장 깊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도 한국어연구는 주목되는 바 크다. 최근『아세아연구』통권42호(고대아세아문제연구소 간)는 67년 소련에서 출판된 『소련언어학 50년』에 실린「콘체비치」의 논문「한국어」를 번역해 게재했다.「콘체비치」는 소련의 한국어학자이며 이번 역자는 서울대에 와 있는 일인「간노」(관야유신=동경외대 강사)씨이다. 이를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2차대전 후 소련에 있어서의 한국어 연구는 크게 발전해 여러 연구소에서 유능한 연구인이 양성됐고 학습서·사전도 엮어졌다. 50년대에는 특히 구체적인 문제가 이론적으로 추구되어 한국 이외에선 처음으로 한국어학연구논문집이 되는『한국어학·중국어학의 제 문제』(58년)에 이어『한국어학논집』(61년)도 나왔다.
「폴리바느프」는 비교·역사 언어학적 방법을 한국어 연구에 적용했다. 한국어의「알타이」기원 설을 제기해서「람스테트」·이숭녕·소창진평·하야육랑 등의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물론 그 가설은 오늘날 충분한 근거가 있다고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호로도비치」는 41년 일인학자 금택장삼랑과 소창진평이 주장한 한국어와 일어의 기원적 친 연성을 부정했던 것이다.
비교유형학의 면에서는 65년「니콜스키」가 한국어의 연어를 그 구조와 문장론 적 기능의 관점에서 특징지어 주목되었다. 한국어와 노어, 한국어와「우즈베크」어의 비교연구도 추진되고 있다.
한국어 음성구성의 실험음반학적 방법에 의한 연구도 진척되고 있다.「진데르」와 황윤중의 연구는 특히 인정받고 있다.
한글에 관한 연구는「호로도비치」「페트로와」「마주르」가 유명하지만 김차현과「F·Z·김」의 연구가 최근 주목되고 있다.
한국어 문자를 간단히 하고 기계화의 이용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30년대 초부터 소련에서 한글「로마」자 화 운동이 일어났다.「라틴」화 신 자모 극동위원회는 박영빈 안인 31자의 「한국어 라틴 화 자모교본」을 발행했고, 35년「호로도비치」는 24자로 된 한국어「로마」자 안을 작성했다.
철자법 문제라든가 문법연구에 관한 저서들도 많이 나타났다. 한국어의 형태론적 구조를 노어로 체계화한「포로드비키」문법(37년간)은『문법개론』(54년)에서 더욱 발전되었다. 현대한국어 가운데 용언의 연구는 특히 많다.「드미트리에라」는 한국어 동사를 4개 태로 구분했다,
의 성 의태어의 범주는「G·A·박」이 전면적으로 기술했다.
한자어와「유럽」어의 차용어는 특히 잘 연구됐으나 고유한 한국어는 아직 덜 연구됐다.
어원연구도 아직 적어「핀란드」학자「람스테트」의 노어 판『일어문법』외에는「폴리바노프」의 논저 밖에 없다.
사서 학 분야에선 51년에 일상어 3만을 실은『노한 사전』『한로사전』이 나왔고,『한로사전 재정 판』(51∼59년)은 기본자료가 된다.
특수 사전으로는 기술·무역·도량형·군사용어사전이 있고, 또 15만 단어를 실은「한로사전」이 소련과학원과 북괴과학원 공동으로 추진되고 있다. 언어와 사회란 면에서 한국민족어의 형성사가「페트로와」와「니큘스키」에 의해 연구되었다. 그러나 방언학은 대단치 않다.
여태까지는 한자어 지명만이 연구됐으나 최근엔 고유어 지명연구도 개발되고 있어 기대가 크다. 제정「러시아」와 소련의 한국어연구는 59년「페트로와」의 논문과 61년「파쉬코프」 의『한국어학논집』, 그리고 48년「콘체비치」가 작성한『한국어학 관계 문헌목록』에서 정리됐다.
소련과학원의「아시아」 민족연구소「레닌·그라드」지부에는 한국어연구용으로 16∼19세기 사본과 목판본을 보존하고 있으며. 여기엔 사전·일인용 한국어학습서·한국인용 중국어학습서·회화서·옛 한국 문 견본 등이 포함된다.
또 한국어는「모스크바」국립대학·「레닌·그라드」국립대학·「모스크바」국립국제관계대학에서 수업이 행해지고 있으며 과학연구원들은 이들 대학이외에 소련과학원「아시아」 민족연구소 한국연구실과 소련과학원「아시아」민족연구소「레닌·그라드」지부,「블라디보스톡」대학동방학부 한국어 과.「타슈켄트」사범대학 등에서 연구하고 있다.
이 같은 소련에서의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19세기초부터 생겼다. 극동을 연구한「러시아」학자의 논저·여행자·선교사들의 수기 등에서 한국의 언어·문자에 관한 보고가 나타나는 것이다. 1874년「푸칠로」의『노한 사전 시편』이 나왔고, 1897년「페테르부르크」대 동방학부에서 한국어 수업이 시작됐다. 한국어의 학문적 연구는「포트스타빈」에서 시작됐다. 그는 1901년부터 22년간「블라디보스톡」동방대학 한국어강좌 주임으로 한국어음의 「러시아」자 전사 법을 개발함으로써 과학원도 이를 따랐다.
소련혁명 후 소련 안의 한국인 문맹퇴치운동이 일어나 교본·문법서가 쏟아졌다. 가장 널리 퍼진 것은 오창환·계봉우 공저의 교과서였다.
「포리바노프」가 1927년 한국어와「알타이」어족관계를 논하면서 연구는 본격화했고 30년대「라틴」화 신 자모위원회 사업의 주요 연구대상이 됐다. 이 시기에「포로드비키」가 한국어문법·음성학의 문제들을 처음으로 현대언어학 개념에 따라 제기했다. 이 두 사람의 노력으로 한국어는 일반언어학적 연구 속에 들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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