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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장님, 시각장애인 '눈'이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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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013 중앙서울마라톤 대회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출발 신호를 누른 뒤 손을 흔들며 마라토너들을 격려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석용 대한장애인체육회장, 이순우 우리금융그룹 회장, 김수길 JTBC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 김영갑 뉴발란스 사업부장. [김상선 기자]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회장님.” “안녕하세요. 회장님 잘 지내셨죠.”

 일반 참가자들이 모두 달려나간 중앙서울마라톤 출발선에 두 회장이 나란히 섰다. 우리금융그룹 이순우(63) 회장과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VMK) 김상용(51) 회장이다. 두 사람의 팔은 1m 길이의 파란색 끈으로 연결돼 있다. 이 회장은 시각장애 1급 김씨의 눈 역할을 하는 마라톤 도우미로 대회에 참가했다.

 출발 신호가 울리자 ‘이인삼각 달리기’처럼 이 회장과 김 회장이 발을 맞춰 함께 출발했다. 달리는 중엔 서로의 팔에 묶인 끈으로 의사소통한다. 끈의 움직임으로 주행 방향, 길의 형태, 장애물의 위치를 알려준다. 두 사람의 호흡은 잘 맞는 편이다. 김 회장은 “시각장애인과 도우미는 신발의 왼쪽과 오른쪽에 비유할 수 있다”며 “이순우 회장과는 호흡이 잘 맞아 딱 맞는 신발을 신고 뛰는 느낌이다”고 말했다. 이 회장과 김 회장이 만난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해 10월 희망서울달리기대회 때 처음 인연을 맺었다. 지난달에도 함께 10㎞를 완주했다. 이 회장은 기회가 될 때마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애호가다. 그는 “마라톤을 하다 보면 나 자신과 대화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베테랑’ 마라토너다. 2006년 시작한 마라톤은 이제 생활이 됐다. 매주 토요일 VMK 회원들과 남산 꼭대기인 팔각정까지 왕복 10㎞가량의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연습을 한다. 매달 두 번 이상 대회에 출전한다. ‘두 회장님’은 4㎞를 함께 뛰었다. 길지 않은 구간이었지만 서로의 호흡을 맞추기엔 충분했다.

이 회장은 “시련을 극복하며 한 걸음씩 내딛는 시각장애인들의 모습에서 오늘도 큰 교훈을 얻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 회장은 “시각장애인에게 길이 1m의 안내줄은 생명줄”이라며 “이 회장은 생명줄을 맡겨도 될 만큼 믿을 만한 주자(走者)”라고 말했다. 중앙서울마라톤에서는 우리금융그룹 임직원 70명이 시각장애인 12명과 보조를 맞춰 함께 뛰었다.

글=안효성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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