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무원이 된 클럽 매니어, 취임 6개월 안영노 서울대공원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4면

안영노 서울대공원장이 열대조류관에 있는 앵무새들과 포즈를 취했다. 왼손에 앉아 있는 새는 검은머리장수앵무 ‘또치’, 오른편 어깨에 올린 잉꼬는 각각 ‘요미’(왼쪽)와 ‘야미’다.

‘안이영노’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다. 아니,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 문화운동, 정확히 말해서 인디문화나 대안문화를 말할 때 빠지지 않던 이름이다. 그 ‘안이영노’라는 이름이 지난 4월 사라졌다. 대신 ‘안영노’라는 이름이 나타났다. 지난 4월 19일 취임한 서울대공원 원장이다. 1997년 봄 ‘개클련’이라는 단체가 출범했다. ‘개방적인 클럽연대’의 준말로 서울 홍익대 앞 인디클럽 주인이 뭉쳐 만든 모임이다. 이 단체를 중심으로 홍대 앞 인디문화와 클럽문화가 확산하고 정착됐다. 이 개클련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가 안이영노였다(실제로 그는 언더그라운드 밴드 ‘허벅지’의 보컬이기도 했다). 이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이 서울시 고위 공무원(서울대공원 원장은 서울시 국장급이다)으로 변신한 것이다. 안영노(47) 원장 취임 6개월을 맞아 week&이 인터뷰를 했다. 6개월을 기다린 이유는, 공무원 수업에 정신이 없었을 신임 원장을 배려해서였다. 언론 노출을 최대한 꺼리며 공무원으로 변신을 도모 중인 안영노 원장을 일간지 중에서 처음으로 만났다.

-양복 재킷이 제법 잘 어울린다. 공무원 같다.

“양복은 옛날에도 입었다. 밤에 클럽 갈 때는 꼭 재킷을 걸쳤다(웃음).”

-직업, 아니 신분이 변했다. 일상도 달라졌나.

“사람이 반듯해진 것 같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걷고 직원이랑 얘기할 때는 두 손을 앞에 모으고 경청을 한다. 생각해 보니 내 업무의 태반이 남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다시 세 글자 이름을 쓰는 것도 바뀐 점이다. 주민등록상 이름만 허용된다더라.”

-지난 6개월간 뭘 했나.

“석 달간 날마다 직원과 간담회를 했다. 한 달은 밤마다 동물을 공부했고, 또 한 달은 땅속을 공부했다. 서울대공원이 내년이면 30년이다. 겉은 멀쩡해 보여도 땅을 파보면 노후시설이 많다. 이러다 6개월을 보냈다. 원장 임기가 2년이니까 벌써 4분의 1이 간 셈이다.”

-그런데 왜 공무원이 됐나?

“고민이 왜 없었겠나. 주변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그러나 필요성을 느꼈다. 사회공헌은 내가 문화운동을 하면서 주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다. 이 자리를 통해 사회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일하는 방식은 달랐을지 몰라도, 그는 이미 정부가 주도하는 많은 사업에 발을 담갔다. 광주 비엔날레 프로그래머 등 여러 사업에 참여했지만, 역시 대표적인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 ‘문전성시’다. 2008년 그는 문전성시 컨설팅단의 초대 단장을 맡았다. 지금은 중소기업청 산하 시장경영진흥원이 문전성시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문화관광형 시장 육성사업을 펼치고 있다.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문화관광부가 콘텐트를 생산해 관계 부처가 정책을 이어받은 성공 사례로 꼽힌다.

-문전성시 프로젝트 효과를 보는 것 같다.

“문화운동 하던 사람이 원장으로 왔다고 하니까, 각 부서 사업계획에 죄다 문화 공연이 들어있더라(웃음). 문화는 맨 마지막에 입는 옷과 같은 것이다. 시설 안전, 관람객 편익, 동물 복지를 먼저 챙기고 있다. 원장이 되자마자 동물과 시설을 먼저 공부한 까닭이다. 문전성시 프로젝트는 각 분야 전문가가 시장 상인을 현장에서 교육해 상인들이 직접 콘텐트를 생산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서울대공원은 이미 스타성이 큰 노련한 사육사가 수두룩하다. 이들이 스스로 콘텐트를 생산하고 있다.”

-동물 복지라. 최근 풀어준 돌고래 ‘제돌이’ 얘기인가.

“동물원은 변해야 한다. 동물원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을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우리는 야생동물 보호와 보전을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생각한다. 역점 사업 중에 ‘먹이 숲 사업’이란 게 있다. 초식동물이 먹을 생초(生草)를 직접 재배하는 사업이다. 시민이 재배·수확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지자체와 협업을 맺을 수도 있다. 최근 경북 청송군과 협정을 맺어, 청송의 사과 낙과를 우리 동물에게 먹이고 동물 배설물로 만든 퇴비를 청송 농가에 주기로 약속했다. 이른바 순환경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여가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동물을 매개로 한 학습과 교육, 재능기부와 자원봉사를 즐기는 여가로 바뀌어야 한다.”

-어렵다.

“서울대공원 면적은 여의도보다 크다. 서울대공원 안에 동물원·식물원·서울랜드·국립현대미술관 등이 있다. 문자 그대로 ‘대공원(Grand Park)’이다. 서울대공원에는 동물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예술품이 있고,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아름드리 숲이 있다. 이와 같은 자원을 잘 다듬어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서울대공원의 라이벌은 에버랜드가 아니다. 전남 순천의 순천만 생태공원이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공공기관이므로 공익성을 우선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후원사업에도 집중하고 있다. 내년 5월 개원 예정인 호랑이 우리는 삼성전자가 후원하기로 했다. 나는 서울대공원이 삼성전자의 후원을 받는 게 아니라 삼성전자가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너무 진지한 것 아닌가?

“놀랄 만한 혁신이 아니라 부드러운 변화를 만들고 싶다. 그러나 방법만큼은 세련될 것이다. 서울대공원에서 펼쳐지는 파티를 상상해 봤는가? 동물로 드레스코드를 맞춘 젊은이가 서울대공원에서 동물 후원 파티를 여는 장면, 멋지지 않은가? 문화는 세련된 무엇이다.”

글=손민호·홍지연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변혁 보다 세련된 변화 … 동물 위한 대공원 가든파티 기대하세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