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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차기 전투기 사업, 발상 전환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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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고성윤
한국국방연구원
국방현안연구위원장

차세대전투기 도입사업(F-X 사업)이 뒤로 늦춰졌다. 논란 끝에 유일 후보 기종인 F-15SE가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부결됨에 따라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당연히 전력 공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이번 결정은 일견 다행스러운 정책적 선택이라 할 만하다. 주변국들 모두 향후 수년 안에 5세대 전투기를 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기종 선정은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까지 고려하여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허비할 수도 없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전력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 인식 아래 필자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사안에 접근하기를 권한다. 기존 사고의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본질적인 접근을 하자는 것이다. 마침 여야 정치권에서도 이번 결정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그리고 사업의 성공을 위해 예산을 증액하거나 아니면 도입 대수의 조정, 혹은 순차적 도입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법은 기존 사고의 틀 안에서만 판단한 것으로 한계가 있다. 군은 ‘적정 전투기 운용 대수’라는 틀 안에 묶여 있다.

 현실을 보자. 예산의 증액은 재정 운영상 어려운 문제고, 5세대 전투기 도입 대수의 하향 조정은 전력 운용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또한 도입하려는 최첨단 전투기와 현재 우리가 보유 중인 기종, 그리고 한국형 전투기사업(KF-X)을 통해 확보하려는 전투기를 묶어 ‘적정 대수’를 결정하는 기존의 ‘하이로 믹스(High-Low Mix)’ 개념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상수와 변수를 혼돈한 접근 방식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전투력의 확보이지, 전투기 대수가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향후 노후 전투기를 대체할 KF-X사업을 별도로 추진하지 말고, 그 예산을 F-X 사업에 한데 묶어 단일 사업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KF-X 사업 또한 자체 개발이냐, 기존 모델의 개조·개발이냐를 두고 수년째 논쟁 중이고 아직도 검토 중이다. 그러니 발상을 전환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추가적 예산 투입 없이 5세대 전투기를 현 계획보다 두 배 가까이 확보할 수도 있다. 이는 예산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군사전략적으로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이런 대안을 선택하면 이익이 뭘까. 공군전투기 전체 대수는 줄어들지만 오히려 전투력은 지금보다 월등히 높아진다는 것이다. 북한의 공군 전력을 압도할 수 있고, 주변국의 잠재적 위협에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일정 대수를 ‘수직이착륙기’로 도입할 경우 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작전적 효율성은 배가된다. 부족한 조종사 수급에도 도움이 된다. 경제적 면은 어떤가. 사업 규모 증가로 단가는 낮추고 조건은 유리하게 끌고 가는 셈법이 나온다.

 이럴 경우 국내 항공산업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최첨단 항공산업은 선진국들이 선점한 지 오래다. 따라서 중급 전투기를 생산하더라도 수출경쟁력은 낮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다. 따라서 우리는 틈새시장을 파고들어야 한다. T-50과 FA-50을 업그레이드시켜 훈련기와 경공격기 시장을 공략하는 선택과 집중전략을 채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렇듯 제시된 대안은 전력 공백을 최소화하면서도 공군 전투력을 강화시킬 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율성까지 보장할 수 있는 획기적인 접근 방법이다. 문제는 고착된 사고와 타성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고, 용기와 결단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