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법파동의 일단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27일 서울 민·형사지법판사들은 민복기 대법원장의 간곡한 사표철회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의함으로써 세칭 사법파동은 사건발생 뒤 한 달만에 겨우 일단락 되어 사법부 정상화의 기틀을 잡게된 듯 하다.
그 동안 사법권의 수호를 위하여 총 궐기했던 법관들이 내걸었던 요구조건이 거의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뺀 칼을 도로 집어넣은 것은 국내외정세가 급변하는 현 시국에서 사법업무의 공백을 회피하기 위한 것으로, 법관들의 고충을 무릅쓴 이와 같은 영단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파동은 직접적으로는 현직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신고사건에서 비롯되었으나 그 근본원인은 그 동안 누적돼왔던 외부로부터의 사법권에 대한 부당한 간섭 때문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동안 정부의 관계고위당국자는 국회답변을 통하여 앞으로는 다시 이러한 사태가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하였으므로 앞으로는 행정부에 의한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사례는 반드시 근절될 것으로 믿지만, 어떠한 외부세력에 의한 것이든 사법권침해운운의 사례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정부와 당, 그리고 국회는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할 것이다.
서울형사지법판사들의 결의문을 보면 『우리의 주장에 대한 대법원장의 계속적 노력과 함께, 행정부의 반성과 성의 있는 조처를 촉구』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부 판사들 중에는 아직도 사표철회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일정한 시한이 지난 뒤 강경한 태도를 표시해야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물론 이들의 비분 강 개하는 심정은 이해할만한 것이 있다 하겠으나 우리는 이들에 대해서도 국회와 행정부, 그리고 대법원장의 선처를 믿고 사법파동의 수습에 협조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번 사법파동이 자주적으로 일단락을 지을 계기를 잡은 것은 주로 민 대법원장의 간곡한 설득과 비장한 결의천명에 직접적인 동기가 있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한나라의 대법원장이 자신의 직을 걸고 사법권의 독립을 위하여 전력을 다할 것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한 사실은 사법사상 일 찌기 볼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민 대법원장은 스스로 다짐한대로 사법부가 처해있는 애로점을 해결하는데 보다 과감한 행정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도 사법파동이 자주적으로 해결된 현시점에서 조속히 대법원장과 만나 사법부와 행정부간의 오해를 풀고 사법권의 독립을 보강하는 획기적인 방안에 관해서 유기한 대화를 나눠주기를 우리는 기대한다.
본래 사법권의 독립이란 민 대법원장도 말했다시피 사법부가 독자적으로 전 취해야 할 것이요, 행정부에의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라고 하겠다. 행정적으로도 예산의 독립이나 판관의 처우개선 문제 같은 일조차 일거에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고, 시간을 두고 계속적이고도 꾸준하게 실천을 촉구해야만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여기서 되풀이 강조해야 할 것은 사법권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법관들이 어떠한 간섭이나 청탁에도 초연하여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함으로써만 얻어질 수 있다는 진리인 것이다. 법관 개개인은 더욱 과감히 사법권독립에 대한 모든 도전적 처사에 대항하여 투쟁해 나가야 할 것이요, 그 방법으로는 사법권에 대한 침해사례가 있을 때마다 이를 공개하여 국민의 심판을 받는 길을 택할 것이요, 또한 정상적인 재판을 통하여 외부압력을 배제하는 용기를 길러야할 것이다.
한달 동안이나 끌어온 사상초유의 사법파동의 교훈을 살려 앞으로 우리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정당들은 법의 존엄성과 재판의 신성불가침을 존중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요, 이번과 같은 불행한 사태가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명심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