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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의 지위 이만하면 된 것 아니냐고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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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한국의 성 평등 수준이 아랍권이란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발표한 ‘성(性)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그렇다. 성 격차지수란 경제참여와 기회, 교육, 정치적 영향력, 건강 등 4개 분야에서 남녀 간에 얼마나 격차가 벌어졌는지를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136개국 중 111위. 우리 앞뒤론 아랍에미리트(109위), 바레인(112위)이 둘러싸고 있으니 아랍권이라는 거다.

 한데 이 발표에 고개를 갸웃하는 건 남성들만이 아니다. 나조차도 한국 여성의 지위가 아랍과 견주어지는 것엔 반감이 생겼다. 요즘 딸이라고 교육에서 차별하지 않고, 공부는 여자들이 더 잘하고, 각종 공무원시험 등에서 여성 합격률은 남성과 비등하다. 지난 20여 년간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경천동지(驚天動地)하게 달라졌다며 오히려 남성들이 소외감을 호소하는 정도다.

 여성가족부도 이 보고서에 ‘울컥’한 모양이다. 여가부는 정책 브리핑을 통해 “이 지수는 해당 지표 분야의 수준이 아니라 남녀 격차만 표시한 것이고, 일부 지표의 측정 방식이 우리나라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조윤선 장관이 지난 5월 WEF를 방문해 지표상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통계 지표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는 여성 지위 향상을 중점관리 국정과제로 삼고 정책적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정책홍보도 곁들였다.

 그래서 397쪽짜리 보고서를 내려받아 훑어봤다. 그러고 나서 내 반감은 확 꺾였다. 보고서는 지역과 일터에서 남녀가 단지 능력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려면 여전히 정부가 여성의 권리를 창출해주고, 시민사회·교육자·언론도 여성권을 강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녀의 사회적 지위를 평등하게 맞추는 일은 오래된 남성우월주의 습관에 의해 방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사회가 격차를 직시하고, 극복하려는 노력 없이 평등 실현은 어렵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관련 기사에서 한국과 터키(120위)를 특이한 나라로 지목했다. 개발도상국 필리핀(5위)과 쿠바(15위)도 상위권인데 개도국을 졸업한 두 나라는 어째서 하위권이냐는 거다. 더 특이한 나라로는 일본(105위)을 꼽았다. 3대 경제대국의 초라한 성적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터키·일본. 가부장적 문화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 나라다. 경제력이 높아졌다고 이런 문화적 토양까지 개선되진 않으니 낮은 점수가 나온 건 아닐까. 이런 이유로 두어 개의 통계 산출 방식을 바꾼다고 성적이 크게 좋아질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성 격차를 줄이려면 통계 개선보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고를 해체하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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