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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썰전 (舌戰) ⑫ 드라마 집단창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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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1990년대 문화코드와 로맨스를 버무린 ‘응답하라 1994’. 이일화·성동일 부부의 딸 고아라는 친오빠와도 같은 정우에게 첫사랑을 느낀다(왼쪽부터). [사진 tvN]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으로 불리우는 김은숙 작가의 ‘상속자들’을 누른 KBS ‘비밀’(유보라 최호철 작가), ‘소포모어(2년차) 징크스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tvN ‘응답하라 1994’(이우정 외), 한국판 ‘위기의 주부들’로 주목받는 JTBC ‘네 이웃의 아내’(‘더 이야기’). 모두 신인 작가들의 약진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특히 ‘응답하라 1994’와 ‘네 이웃의 아내’는 작가 4~6명의 집단창작이라는 방식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페이스북 ‘드라마의 모든 것’팀의 드라마 썰전(舌戰) 12회는 ‘미드형 집단창작’이라는 새 집필 방식에 주목했다.

 ◆1인 작가시대는 옛날=그간 우리 드라마 집필은 주로 1인, 혹은 2인 공동집필(‘뿌리깊은 나무’의 김영현, 박상연)이었다. 반면 ‘응답하라 1994’는 이우정 작가 등 총 6명의 예능작가, ‘네 이웃의 아내’는 30~40대영화기획·PD 출신의 4명으로 이뤄진 ‘더 이야기’가 썼다.

 ‘더 이야기’는 이번이 첫 방송 드라마다(현재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시나리오 작업도 하고 있다). 자칫 막장에 가까운 소재를 강한 현실감과 코믹 터치로 잘 버무려냈다. ‘응답하라 1994’는 작가뿐 아니라 연출(신원호), 기획(이명한)까지 전부 예능 출신이다(KBS ‘1박2일’ ‘남자의 자격’). 전작 ‘응답하라 1997’에 이어 또 한번 예능출신 집단창작 모델을 선보였다. 이우정 작가는 그간 ‘꽃보다 할배’에도 참여했다.

 예능작가 강세는 집단창작이 정착된 시트콤에서 이미 확인된 것이지만 최근에는 드라마 일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상상력만이 아닌 고증과 취재에 의한 강한 리얼리티, 회당 마무리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구성력 등이 강점이다. ‘주군의 태양’의 홍자매, ‘나인’의 송재정 작가는 ‘서프라이즈’ 출신이다. 김영현 작가 역시 ‘테마게임’으로 출발했다.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의 하명희 작가도 ‘사랑과 전쟁’을 썼다. 고선희 서울예대 교수는 “스타작가 잡기에 집중하는 지상파와 달리 케이블 드라마들의 차별화 전략이 눈에 띈다”고 평했다.

40대 부부의 성과 일상에 대한 솔직한 묘사로 인기를 끌고 있는 ‘네 이웃의 아내’. [사진 JTBC]

 ◆예능과 드라마의 시너지=단연 주목되는 프로는 ‘응답하라 1994’다. 전작과 유사한 설정과 장치로 자기복제가 우려됐지만 일단 차별화에 성공했다. 지방 출신 새내기들이 모인 신촌 하숙집이 무대. 서태지와 015B, 삐삐와 PC통신, 대학농구 등 90년대 문화에 대한 대중의 집단기억을 당시의 대학생활, 풋풋한 로맨스와 잘 버무렸다. 여러 지역 출신의 조연급 캐릭터들도 생동감 있다. 거기에 시대상을 반영한 현실밀착형 에피소드가 공감을 사면서 향수를 자아내고 있다. 연기력 논란을 일시에 불식시킨 고아라, 신드롬급 인기를 끌고 있는 정우, 나이를 잊은 연기를 선보이는 김성균 등 배우들의 재발견도 화제다.

 김일중 한국콘텐츠진흥원 LA소장은 “캐릭터 중심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잔뼈가 굵은 예능작가·PD들이 그 노하우를 바탕으로 미니시리즈 형식을 차용해 발전시킨 시즌제 시트콤”이라고 평가했다. “2007년 이후 시청률 40%를 이룬 KBS 예능의 전성기를 이끌며, 리얼리티쇼와 드라마의 접합을 최전선에서 진행한 이우정 작가”(김주옥 평론가), “스토리와 편집·음악의 예능적 요소와 영화적 기법을 결합해 독특한 정서를 구축한 신원호PD”(이재문 CJ E&M PD)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이른바 미드식 집단토론·창작 시스템이 성숙됐다는 것이다. “예능작가들은 드라마작가들과 달리 촬영현장, 편집실에서까지 함께 일한다. 이런 현장중심 협업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김일중). 수다 떠는 장면에서 대사를 잘게 컷으로 나누지 않는 영화적 기법, 철저히 합을 맞춘 배우들의 연기호흡도 호평 받았다.

 김주옥 평론가는 “리얼리티쇼와 드라마의 혼종이자 미드와 한드(한국 드라마)의 혼종”이라고 평했다. “시즌제이면서도 독립적이고, 회당 고유한 주제가 있으면서도 우리 드라마 전형의 로맨스 판타지가 있다. 시청자가 경험했을 법한 에피소드와 소품들이 현실감을 살리며, 개인의 추억을 공적으로 공유하게 하는, 독자적 브랜드 가치를 지녔다”는 평가다. “80년대 ‘응답하라’ 시리즈, 포맷화가 가능하다”(홍석경 서울대 교수)는 지적도 나왔다.

 ◆사투리의 재발견=“사투리나 지하철에서 길 잃기 등에서 드러나는 지역성이라는 코드도 흥미롭다.”(김영찬 외대 교수) 여러 지방 출신으로 구성된 작가와 배우들이 실감나는 사투리의 향연을 보여준다. 사투리 하면 우스꽝스러운 감초 연기자들의 웃음 포인트이거나 하층민의 전유물 정도로 여겨졌던 과거와 달리, 문화적 다양성을 더하는 주요 요소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투리가 우리 드라마의 중심에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지난해 부산 배경의 ‘응답하라 1997’과 ‘골든 타임’부터다. 특히 ‘골든 타임’은 엘리트 직종인 의사들이 모두 부산 사투리를 써서 언어의 위계를 뒤집었다.

양성희 기자

★ 5개 만점, ☆는 ★의 반 개

▶ 드라마 ‘응답하라 1994’

★★★★☆ (공희정 드라마평론가) : 정확한 고증과 세밀한 표현, 다양한 배우들의 발견,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장치들의 적확한 배치.

★★★★☆ (홍석경 서울대 교수) : 시즌제가 가능한 형식의 새로움. 일군의 시청자들을 감동으로 몰아넣는 강한 스토리텔링의 수작.

★★★★ (허은 청강문화산업대 교수) : 치밀하게 기획하고, 작가의 상상력이 아닌 고증과 토론으로 완성된 대본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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