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치균 봄그림'전 아트링크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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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내리는 날, 작업실로 가는 길, 옆 산엔 갓 물든 연둣빛으로 봄의 자태가 더욱 짙게 드러나고… 흰꽃으로 뒤덮인 한 그루 나무, 비에 젖었어도 찬란하다."

화가 오치균(47)씨가 자박자박 우리 곁으로 오는 봄을 앞서 맞이했다. 5일부터 15일까지 서울 관훈동 갤러리 아트링크에서 열리는 '오치균 봄그림전'은 춥고 쓰라렸던 겨울을 이겨낸 작가의 기쁨으로 환하다. 화가는 "폐허 속에서 홀연히 핀 봄 꽃은 가히 신성하기까지 하다. 언제 봐도 흥분되는, 그리고 싶은 소재"라고 말했다.

전시와 함께 펴낸 화집에는 봄을 그리워하는 화가의 남다른 마음이 담겨있다. 50여점 봄그림에 그가 붙인 짤막한 글은 봄풍경을 애무하듯 손가락으로 물감을 문질러 표현한 그림들과 함께 봄의 위엄을 노래한다.

민들레는 "보송보송 털이 난 조그만 고양이가 앉아 있는 것처럼 앙증맞게 피어"나고, 살짝 돋은 새싹은 "희망의 미소"다.

화가는 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기지개를 켜는 새 순에서 생의 징표를 본다. 겨울의 죽음이 남아 있지만 대세는 봄이다. 고통스러운 몸부림 끝에 아물어가는 상처 자국처럼 어느덧 산과 들을 물들이는 새싹을 그는 "통쾌하다"고 반긴다.

지난 해 강원도 사북의 풍광을 담은 그림전에서도 그는 사람들이 떠난 땅에 핀 꽃으로 삶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 "풀 한포기 자랄 것 같지 않은 까만 동네다.

생명이 담겨 있을 법하지 않은 거친 담벽들 사이로 힘차게 개나리가 피어올랐다." 오치균씨가 그린 봄은 미술평론가 최석태씨가 지적했듯, 우리와 우리 주위의 것에 위엄을 부여하는 일이다. 02-738-0738.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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